[OSEN=정승우 기자] 도널드 트럼프(78) 미국 대통령의 "환영" 발언이 공허하게 울렸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미국 정부는 2026 북중미 월드컵에 이란이 참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놨지만, 정작 이란 정부는 정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최고지도자 사망과 미국의 공습, 중동 전쟁 확산 속에서 이란의 월드컵 참가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강경 발언까지 나왔다. 이제 시선은 FIFA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로 쏠린다.
아랍 매체 '알 자지라'와 'AP통신', 영국 'BBC' 등에 따르면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12일(한국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2026 북중미 월드컵 준비 상황과 최근 중동 정세를 논의한 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대표팀의 미국 내 대회 참가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라고 밝혔다.
인판티노 회장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금 같은 시기일수록 월드컵 같은 이벤트가 사람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 "그의 지지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축구가 세상을 하나로 만든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준다"라고 덧붙였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FIFA 수장과 개최국 대통령이 모두 이란의 참가를 열어둔 셈이다. 문제는 정작 이란 측 반응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이란 정부는 이미 '참가 불가' 쪽으로 마음을 굳힌 분위기다.
AP통신에 따르면 아흐마드 도냐말리 이란 체육청소년부 장관은 이란 국영 TV를 통해 "미국의 침공으로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한 상황에서 이란의 월드컵 참가는 불가능하다"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 대표팀 선수들이 미국에서 안전할 수 없다. 미국은 불과 몇 달 사이 두 차례 전쟁을 우리에게 강요했고 수천 명의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이런 상황에서 월드컵 참가는 분명히 불가능하다"라고 못 박았다.
알 자지라는 이보다 더 강경한 메시지도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도냐말리 장관은 "이 부패한 정권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며 우리 지도자를 암살하고 수천 명의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라며 "그런 점을 고려하면 어떤 경우에도 미국 땅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참가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환영 발언이 이란의 입장을 바꿔놓기 어려운 이유다.
실제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이란은 이미 2026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확보한 상태다. 아시아 예선을 무난하게 통과하며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게 됐다. 본선에서는 벨기에, 이집트, 뉴질랜드와 함께 G조에 편성돼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시애틀 등지에서 조별리그를 치를 예정이었다. 조별리그를 넘긴 뒤 경우에 따라 미국과 맞대결할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다만 최근 정세가 모든 계산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중동 전쟁이 본격화했고, 이란 내부도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자국 리그 일정마저 일시 중단된 상황에서 대표팀의 미국행을 논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는 기류가 강하다. 이란은 최근 FIFA가 애틀랜타에서 주최한 참가국 회의에도 유일하게 불참한 것으로 전해졌다. 메흐디 타즈 이란축구협회장 역시 "상황이 이런데 누가 정상적으로 대표팀을 그런 곳에 보내겠느냐"라는 취지로 반문했다.
이쯤 되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외교적 수사에 가까워 보인다. 더구나 그의 최근 언급까지 돌아보면 일관성도 부족하다. 알 자지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이란의 월드컵 참가 여부에 대해 "난 정말 신경 쓰지 않는다. 이란은 심하게 패배한 나라다. 그들은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환영 메시지와 냉소적인 평가가 짧은 시간 안에 뒤섞인 셈이다.
이란의 불참이 현실화할 경우 FIFA도 초유의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BBC는 "월드컵 예선을 통과한 팀이 본선 직전 불참하는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라고 짚었다. 규정상 명확한 선례가 없는 만큼 FIFA의 재량권이 상당 부분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대체 참가국 문제도 벌써부터 거론된다. 일반적으로는 해당 대륙 연맹 내 차순위 팀이 출전권을 이어받는 방식이 유력하다. 이런 논리라면 아시아축구연맹(AFC) 소속 국가들이 우선 검토 대상이 된다. 현재로선 이라크와 아랍에미리트(UAE)가 유력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이라크는 당초 대륙 간 플레이오프를 통해 본선행을 노리고 있었고, UAE는 그보다 한 단계 아래 평가를 받는 팀이다.
다만 변수는 적지 않다. BBC는 FIFA가 대체 국가를 정할 재량권을 갖고 있다고 설명하면서도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할지는 불분명하다고 전했다. 일부에서는 FIFA가 시장성과 흥행성을 고려해 전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이 대표적인 예다. 물론 중국은 아시아 4차 예선 진출에도 실패한 팀이다. 만약 FIFA가 이런 팀에 본선 티켓을 준다면 형평성 논란과 거센 반발이 불가피하다.
FIFA가 당장 결론을 내리지는 않을 가능성도 크다. 아직 대륙 간 플레이오프 등 본선 참가국 구도가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중동 정세가 단기간 내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쟁 상황이 진정되면 이란의 입장이 달라질 여지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긴 어렵다. 반대로 갈등이 더 격화되면 참가 포기 선언이 공식화될 수도 있다.
이란 입장에서도 월드컵 불참은 큰 손실이다. 본선 참가만으로도 상당한 배당금과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데, 이를 모두 포기해야 한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이란이 최종적으로 불참할 경우 출전 비용 등 최소 1050만 달러(약 152억 원)를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최대 50만 스위스프랑(약 9억 4000만 원)의 벌금과 차기 대회 예선 관련 제재까지 감수해야 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럼에도 현재 이란 정부의 태도는 단호하다. 안전 문제와 정치적 상징성, 최고지도자 사망 이후의 국내 정서를 감안하면 축구가 개입할 공간은 거의 없어 보인다. FIFA와 트럼프 대통령은 '월드컵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다'는 메시지를 내세우고 있지만, 적어도 지금의 이란에는 통하지 않는 이야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환영한다고 해서 이란이 움직일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월드컵 무대는 이미 준비를 시작했지만, 이란의 시계는 아직 전쟁 한복판에 멈춰 있다. FIFA는 이제 외교적 수사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문제와 마주하게 됐다. 이란이 정말 빠질 경우, 2026 북중미 월드컵은 개막 전부터 가장 무거운 결정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