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문화를 소재로 한 미국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감독 매기 강·크리스 애펄헌즈, 이하 ‘케데헌’)’가 아카데미 시상식에 도전한다. 한국 영화 ‘지구를 지켜라’(감독 장준환)를 리메이크한 ‘부고니아’도 4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후보에 오른 한국 작품은 없지만, 한국적 정서와 문화가 접목된 할리우드 작품이 얼마나 선전할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케데헌’은 오는 15일(현지시간) LA 돌비극장에서 열리는 98회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 2026)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 등 2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케데헌’ 주인공 걸그룹 헌트릭스의 목소리를 연기한 이재, 오드리 누나, 레이 아미는 이날 시상식 축하 무대에 올라 주제가상 후보인 ‘골든’(Golden)을 한국 전통 무용, 악기 연주와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시상식 결과 예측 사이트 ‘골드더비’의 전망에 따르면 12일 기준 ‘케데헌’의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수상 가능성은 95.1%, ‘골든’의 주제가상 수상 가능성은 89.7%에 이른다.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경쟁작인 ‘주토피아2’는 3.2%, 주제가상 경쟁작 ‘씨너스’의 ‘아이 라이드 투 유(I Lied to You)’는 9.5%에 그쳤다. 미국 대중문화 전문지 버라이어티도 지난 9일 오스카 예측 기사에서 ‘케데헌’이 2관왕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앞서 ‘케데헌’은 크리틱스 초이스와 골든 글로브에서 2관왕, ‘애니메이션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미국 애니 어워즈에선 10관왕을 차지했다. 주제가 ‘골든’은 K팝 최초로 그래미 어워즈 수상 기록도 세웠다. 지난 2일엔 아카데미 시상식 가늠자로 여겨지는 미국 제작자조합(PGA) 시상식에서 최우수 극장용 애니메이션 영화 프로듀서상을 수상했다. 민용준 영화평론가는 "미국 제작자조합 시상식에서 투표한 사람들이 아카데미에서 그대로 투표한다고 보면 된다"며 "이변이 없다면 ‘케데헌’의 2관왕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물론 ‘케데헌’이 2개 부문 다 수상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은 2002년 신설된 이래 디즈니와 픽사 등에서 만든 미국 애니메이션이 독식해왔다. 그런데 최근 2년 연속 비(非) 미국 작품이 수상한데다, ‘케데헌’이 얼핏 미국 애니메이션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부담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시상식은 워낙 많은 변수가 있어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며 “만약 ‘케데헌’이 1개 부문만 수상한다면 압도적인 인기를 누린 ‘골든’이 주제가상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지구를 지켜라’(2003)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작 ‘부고니아’(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수상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지구를 지켜라’의 투자 배급사인 CJ ENM이 ‘부고니아’의 기획·제작에도 참여했다. ‘부고니아’는 인류를 구원한다는 신념에 사로잡힌 두 남자가 한 여성 CEO(엠마 스톤)를 외계인으로 지목해 납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원작에선 납치 피해자가 중년의 남성 사장이었지만, 리메이크 작품에선 젊은 여성 CEO로 바뀐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갈등이 계급 투쟁의 성격에서, 젠더 갈등 요소가 추가된 복합적인 갈등으로 입체화됐다.
‘부고니아’는 아카데미 최고상에 해당하는 작품상을 비롯해 여우주연상ㆍ각색상ㆍ음악상 등 4개 부문 후보로 올랐다. 미국의 유력 연예 매거진 더 할리우드 리포터는 “한국 영화계의 풍부한 스토리텔링 자산을 세계적인 인재들과 함께, 전 세계 관객을 위해 재해석한 프로젝트”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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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유력 후보는 없다…작품상ㆍ남우주연상 누가 탈까
다만, 작품상 부문에서 ‘부고니아’의 수상 가능성은 크지 않다. 올해 작품상의 유력 후보로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와 ‘씨너스(감독 라이언 쿠글러)’가 꼽힌다.
‘씨너스’는 1930년대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인종 차별과 사회적 갈등을 초자연적 공포 장르의 틀로 풀어낸 영화다. “현재 우리 시대의 불안과 정서를 가장 잘 포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 주연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한때 비밀 혁명 단체 소속이었던 밥(디캐프리오)이 딸을 구하기 위해 다시 싸움에 나서는 이야기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씨너스’가 돌풍을 일으키기 전까지 미국 제작자조합(PGA), 감독조합(DGA), 영국 아카데미(BAFTA) 등에서 주요 상을 휩쓸며 유력 작품상 후보 입지를 다져왔다. 그런데 ‘씨너스’가 이달 1일 또 다른 아카데미 전초전으로 불리는 미국 배우조합상(SAG)에서 최고상인 앙상블상과 남우주연상을 동시에 거머쥐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씨너스’는 올해 아카데미에서 16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역대 최다 기록을 경신해 13개 부문 후보에 오른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압도하고 있다.
남우주연상에도 관심이 모인다. 당초 유력 후보였던 티머시 샬라메(영화 ‘마티 슈프림’ 주연)가 발레와 오페라를 깎아내리는 발언을 해 구설에 올랐다. 지난달 버라이어티와 CNN이 연 타운홀 행사에서 대담 중에 한 발언이 SNS 통해 번지면서다. 공연계가 강하게 반발하는 가운데, 골드더비에서 수상 가능성이 22%포인트 폭락하며 2위(29.2%)로 주저앉았다. 동시에 1위로 오른 ‘씨너스’의 마이클 조던의 수상 가능성은 57.5%로 예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