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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중고차는 인도양에, 화물차는 갓길에…전쟁이 멈춰 세운 영세업자들

중앙일보

2026.03.12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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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인천 연수구 중고차 수출단지에 수출을 기다리는 차량이 늘어선 모습. 판매가 확정된 차량엔 'Sold(판매된)'라고 표시돼 있다. 오삼권 기자
지난 11일 오후 인천 연수구 옛 송도유원지 인근 중고차 수출단지. 약 1600개 업체가 모인 전국 최대 중고차 수출단지란 수식어가 무색하게 외국인 바이어를 비롯해 오가는 인적이 드물었다. 판매가 확정된 중고차를 인천항으로 옮기는 대형 트레일러는 수출단지 동문 초입에 시동이 꺼진 채 방치돼 있었다. 25년 경력의 수출업체 대표 윤승현(58)씨는 “아랍에미리트(UAE)로 향하던 수출 컨테이너선이 인도 근처에 그저 둥둥 떠 있다”며 “물건이 못 가니, 수출 대금도 7억원도 못 받고 있다. 사실상 영업이 멈춰버린 상태”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전쟁이 길어지면서 일부 국내 개인·영세 사업자의 생업도 멈춰섰다. 중동과 중앙아시아 시장에 의존하는 중고차 수출업자가 대표적이다. 윤씨는 “대체항에 하역을 할지, 도로 인천항으로 쉽백(Ship-back)할지 선사로부터 아직도 공지를 받지 못했다”며 “지금까지 확정된 추가 비용만 1억원이 넘는데, 배가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수출한 중고차 88만5313대 중 리비아(16.6%)·키르기스스탄(15.5%)·튀르키예(14.9%) 같은 중동·중앙아시아 대상 물량이 70.6%(62만4780대)에 달한다.

지난 11일 인천 연수구 중고차 수출단지에 차량 운반용 트레일러가 빈 채로 주차된 모습. 오삼권 기자
20년 경력의 중고차 수출업자 박모(60)씨는 “중동 물량은 요르단 아카바항이나 UAE 제베알리항으로 가는데, 지금 그곳으로 배가 아예 들어가지를 못한다”며 “주변 다른 항구에 내린다고 해도, 육로 이동 인프라가 없어 비용이 엄청나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대론 영업을 못 한다”고 말했다. 수출업자를 대신해 물류 업무를 처리하는 물류 포워딩(주선) 업체 대표 이모(50대)씨는 “컨테이너 1대당 운임이 1100~1200달러(약 162만~177만원)인데, 선사가 추가로 요구하는 전쟁할증료(WRS)가 3500~4000달러(약 517만~591만원)에 달한다”고 했다.

화물 운송이 멈춘 건 국내도 마찬가지다. 중동 분쟁 여파로 화물차에 쓰이는 경윳값이 치솟으면서다. 이날 인천항 물류단지서 만난 3년 차 대형 화물차 기사 김모(60대)씨는 “400L짜리 주유 탱크를 매일 가득 채우는데, 어제는 기름값이 60만원 정도 나왔다”며 “보통 하루에 60만원 정도 버니깐 남는 게 모두 기름값으로 나가는 셈인데, 이 상태가 2~3개월만 지속해도 국내에 굴러다닐 수 있는 화물차 1대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35년째 화물 운송을 하고 있다는 최모(60대)씨는 “이 근방 주유소 경윳값이 L당 1660원이었는데, 지금은 1919원까지 올랐다”며 “월 400만~450만원이었던 주유 비용이 550만~600만원 정도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인천 연수구 항만 물류단지 길가에 빈 화물차가 멈춰선 모습. 김예정 기자
금속 가공업체 등 900여개 기업이 밀집한 경기도 김포 학운산업단지에서도 움직이는 화물차를 찾아보기 힘들다. 10년째 중형 화물차를 몰고 있다는 이모(50대)씨는 “기름값 부담이 1달에 50만원씩 더 들게 생겼다”며 “나처럼 차량 할부금이 없는 사람은 시동을 꺼버리면 그만이지만, 대부분은 할부금을 갚느라 손해인 걸 알면서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5t 트럭을 운전하는 김모(47)씨는 “한 번에 15만원씩 주유해서 1주일에 사흘씩 일했는데, 이젠 트럭을 이틀밖에 못 몬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유류세 인하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했다.

지난 11일 경기도 김포시 학운 일반산업단지의 한 물류창고에 화물차가 대기하는 모습. 김예정 기자
정부는 중동발 물류·유가 충격이 이어지자 범정부 대응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월 만료된 유가연동보조금을 4월까지 2개월 연장해 지급한다. 산업통상부는 수출 중견·중소기업에 80억원 규모의 수출 바우처를 투입한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11일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중동 상황이 민생과 경제·산업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추경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정책수단을 활용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정부가 유가 최고가격제를 2주 단위로 시행하겠다고 했지만, 원가 변동이 큰 상황에선 효과를 볼 수 없을뿐더러 2주마다 상한 가격이 바뀌면 시장 혼란이 오히려 가중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류세 인하 폭을 확대하는 등 기름값을 낮추는 적극적인 조치에 나서야 개인과 영세사업자의 숨통이 트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삼권.김예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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