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2시30분 서울 은평구 이호철 북콘서트홀. 자립준비청년 7명이 함께 쓴 에세이집 ‘가로등이 켜지는 시간’ 북콘서트 무대에 천도하(27)씨가 섰다. 자립준비청년은 아동복지시설과 조부모 등 위탁가정의 보호를 받다가 사회에 나와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들이다.
새엄마의 폭행에 시달리다 중학교 1학년부터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손에 자란 천씨 역시 자립준비청년이다. 지금은 경기도 소재 대학 치기공과 2학년에 재학하며 치과기공사를 꿈꾸고 있다. 그는 다른 자립준비청년들과 함께 책을 출간했다.
천씨는 이 자리에서 ‘정류장’을 꺼내들었다. 그는 “정류장은 늘 거쳐가는 곳, 우선순위에서 밀린 곳처럼 느껴졌다. 그게 부모님에게 우선순위가 되지 못하고 온기를 그리워하던 내 모습 같았다”며 “그러나 책을 쓰는 과정은 제 마음 속 온기를 느끼게 해줬던 값진 시간이었다”고 했다.
천씨의 대학 동기 송예원(27)씨는 이날 행사에 참석해 “도하는 제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열정적인 친구”라며 “다른 사람들도 책을 읽고 자립준비청년이 여느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뭐든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씨는 “곧 책이 배송되는데 도하의 이야기를 얼른 읽고 싶다”고 했다.
천씨와 같은 자립준비청년은 해마다 약 1000~2000명이 사회로 나온다.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전국에서 보호종료된 청년은 8586명이다. 정다애 초록우산 경기남부가정위탁지원센터 복지사업팀장은 “보호아동들은 자신이 뭔가 잘못해서 부모에게 버려진 게 아닐까 하는 자책과 우울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보호가 종료된 후에는 복지의 대상으로만 보는 사회적 편견과 자립의 어려움에도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장동호(28)씨는 이번 책출간을 처음으로 제안한 자립준비청년이다. 장씨는 8살 때 부모님과 헤어져 동생 두 명과 같이 고모 댁에 맡겨졌다. 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 그리고 고모네 가족이 자신 때문에 불편할 거라는 걱정 때문에 너무 일찍 어른이 됐다. 장씨는 온라인 광고대행사를 운영하며 직원 10여명을 둔 4년차 사업가다. 장씨는 “사업으로 성공해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크다”면서 “부모님과 같은 존재인 고모, 고모부께도 그런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장씨는 “자립준비청년으로서 제도적인 지원을 받아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도움만 받는 존재’란 편견에 갇히는 게 안타까웠다”며 “사회가 우리를 수동적 존재로만 보지 않고 잠재력이 무한한 청년으로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쓰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조부모 가정에서 자라 사회복지사를 꿈꾸는 주환(24·가명)씨 역시 “자립준비청년도 결국 다른 청년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도심 한가운데 지나가는 사람들 중 누가 자립준비청년인지 구분할 수 없듯, 과거의 환경이 지금의 사람 전부를 설명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혼자뿐인 집에서 TV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외로움을 견뎠다는 동글이(29·가명)씨는 “처음에는 나를 아껴주지 않았던 가족들에 대한 울분으로 가득한 글만 나왔다”면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현재의 나에게 집중하게 됐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마지막 글을 쓸 땐 가족들도 각자 삶에서 최선을 다했고 나도 최선을 다해 살아왔으니 고마움에 더 집중하자는 자세가 됐다”고 말했다. 그의 마지막 글 ‘나답게’엔 “돌이켜 생각해 보니 환경이 좋지 않았을 뿐, 삶은 나름 순탄했다”는 담담한 회고가 담겨있다. 그는 서른 살에 쓸 버킷리스트가 기대된다는 말로 글을 마쳤다.
객석에 자리한 자립준비청년들도 북콘서트에 박수를 보냈다. 조부모 가정에서 자란 자립준비청년 김동혁(27)씨는 “그동안 약점이 될까봐 자립준비청년이란 정체성을 숨기며 살았지만 오늘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보호종료를 4년 앞둔 대학생 백수연(20)씨는 “선배들의 말처럼 사회가 능동적인 존재로 자립준비청년을 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북콘서트를 개최한 천씨 등 저자 7명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경기남부가정위탁지원센터의 자립준비청년 자조모임 ‘청년들의 걱정 없는 하루(청하)’에서 연을 맺었다. 이들은 지난해 월드비전의 출간 지원을 받았다. 정다애 초록우산 경기남부가정위탁지원센터 복지사업팀장은 “홀로서기가 두려운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이 책이 밤길 밝혀주는 가로등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지성 한국침례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립준비청년의 시각에서 이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선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