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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기도 어려운데… 42㎝ 세계 최대 '주먹찌르개' 미스터리

중앙일보

2026.03.12 01:43 2026.03.12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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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구석기 ‘주먹찌르개(양면석기)’가 첫 공개된 12일 경기도 연천 전곡선사박물관 상설관에 전시품이 전시되어 있다. 우상조 기자
품에 한가득 안길 정도로 커다란 돌덩이의 한쪽 끝 여기저기가 날렵하게 잘려 있다. 낙석끼리 충돌이나 자연적 부서짐이 아니라 인간의 힘과 의도로 절단한 흔적이다. 약 30만년 전 구석기 인류의 ‘맥가이버 칼’로 불리는 주먹도끼(양면석기의 일종) 가운데서도 한쪽 면 위주로 손질돼 ‘주먹찌르개’로 분류되는 석기다. 길이 42㎝, 너비 16㎝에 무게는 약 10㎏에 이른다. 전 세계 구석기 아슐리안 유적에서 이제껏 발견된 양면석기 가운데 가장 크다.

경기도 연천군에 자리한 전곡선사박물관(이하 박물관)이 12일 상설전시 구석기실을 전면 개편하면서 지난해 이곳으로 이관된 초대형 주먹찌르개를 처음 공개했다. 해당 석기는 택지 조성에 앞서 실시된 2021~2022년 전곡리유적 85-12번지 발굴조사(담당 겨레문화유산연구원) 당시 출토된 것으로 유적 층위 중 가장 오래된 최하층(해발고도 53m, 지표 아래 4.5m 깊이)에서 나왔다. 약 50만년 전 현무암층 바로 위, 약 25만~20만 년 전후에 형성된 황색사질점토층(4유물층)이다.

이 층위에선 초대형 주먹찌르개를 포함해 총 794점의 석기가 나왔다, 이 가운데 양면석기는 35점으로 가로날도끼(5점), 주먹도끼(16점), 주먹찌르개(12점), 주먹칼(2점) 등 다양하다. 이한용 박물관장은 “전곡리 일대 현무암 바로 위 층위에서 양면석기가 무더기로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곳 구석기 유적이 30만년 전후 형성되기 시작했단 걸 입증하는 확실한 증거”라고 말했다.
12일 경기도 연천 전곡선사박물관이 상설전시실을 개편하고 언론 공개회를 열었다. 우상조 기자

전곡리 선사유적은 1978년 주한 미군병사 그레그 보엔(1950~2009)이 한탄강변에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를 발견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전까지 유럽·아프리카 일대에서만 나와 동아시아에선 없다고 여겨지던 전기 구석기 주먹도끼 발견에 인류 진화 및 이동의 역사가 새로 규명되기 시작했다. 이듬해 한국 연구자들로 꾸려진 발굴단(단장 김원용)이 유물층에서 주먹도끼 1점을 추가로 발견하는 등 30여년간 20여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약 8000점의 구석기 유물을 확보했다. 다만 발굴 층위가 워낙 두터운 탓에 고인류의 최초 거주 시기를 두고 수만 년에서 30만년까지 학설이 분분했다. 학계에선 총 2200여점의 석기를 추가로 확보한 이번 발굴조사가 ‘30만년설’에 확실한 무게를 실어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배기동 한양대 명예교수느 “다양한 형태의 주먹도끼를 만든, 뛰어난 기술의 고인류 집단이 약 30만년 전부터 전곡리에 살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일대 발굴조사 중 출토된 화강편마암제 ‘초대형 주먹찌르개’. 17만~25만 년 전 형성된 지층 최하층에서 나온 구석기 양면석기로 길이가 42㎝에 달해 비슷한 석기 중에 세계에서 가장 크다. 사진은 2025년 박성진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가 발표한 논문 ‘전곡리 85-12번지 출토 초대형 양면석기의 기술·기능적 분석’에 실은 것으로 초대형 양면석기를 두손으로 들고 내려찍는 모습을 재연한 것이다.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일대 발굴조사 중 출토된 화강편마암제 ‘초대형 주먹찌르개’의 도면. 2025년 박성진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가 발표한 논문 ‘전곡리 85-12번지 출토 초대형 양면석기의 기술·기능적 분석’에 실은 그림이다. 이 주먹찌르개는 구석기 시대인 17만~25만 년 전 지층에서 나온 것으로 길이가 42㎝에 달해 비슷한 석기 중에 세계에서 가장 크다.
출토품 가운데 초대형 주먹찌르개의 쓰임새도 주목거리다. 전기 구석기시대 아슐리안 유적의 양면석기 평균 길이가 15.5㎝이고 대형 분류 기준이 20~30㎝인데 이번 출토품은 42㎝나 되는 초대형이다. 나머지 양면석기가 주로 규암인 반면, 입자가 굵고 떼어내기 힘든 화강편마암으로 만들어진 점도 특이하다. 박성진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는 지난해 논문(‘전곡리 85-12번지 출토 초대형 양면석기의 기술·기능적 분석’)에서 초대형 주먹찌르개가 “나무·뼈·뿔처럼 단단한 재질의 대상을 재단하거나, 대형동물 도살의 초기 단계(사지 해체)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박물관의 김소영 학예연구사는 “사용 흔적을 분석해보니 단단한 것보다 다소 무른 것을 찌르거나 내려치는 데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나아가 이같은 대형 석기가 실용적인 한손 작업이 어렵다는 점에서 기능적 용도 외에 상징적(남성적 힘 과시)·미적(예술 초기단계) 의도로 제작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한용 관장은 “흔한 규암이 아니라 유적지 일대에 흔치 않은 화강편마암을 일부러 찾아서 만든 도구”라면서 “구석기인들에게 ‘신라 금관’ 같은 위세품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해외에서도 아프리카 올두바이 고지(길이 31㎝)나 유럽 아라고 유적(길이 33㎝) 등에서 출토된 대형 양면석기를 의례용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12일 경기도 연천 전곡선사박물관 상설전시 구석기실이 개편을 마치고 언론에 공개됐다. 1978년 미군 병사 그레그 보엔이 발견한 주먹도끼를 비롯해 전곡리에서 초기에 출토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 5점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우상조 기자
박물관 측은 초대형 주먹찌르개의 제작 용도를 밝히기 위한 사용흔적 분석과 실험고고학 연구를 계속하면서 오는 5월 특별전을 통해 결과를 공개할 계획이다. 이 관장은 “이번 출토품을 비롯한 전곡리 유적의 가치를 면밀하게 정리해 향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아슐리안=전기 구석기 시대의 대표 석기 문화·기술로, 주먹도끼를 중심으로 양면 가공(양면석기) 석기 제작이 특징이다. 프랑스 생 아슐에서 다량의 주먹도끼가 발견되어 명명되었고,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널리 확인된다. 동아시아에는 없다고 여겨지던 중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1978년 경기도 연천 전곡리에서 발견됨으로써 기존 학설을 뒤집고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강혜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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