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11일(현지시간) 관보를 통해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대만, 베트남, 멕시코, 인도 등 16개국을 대상으로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중국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미국과 무역 합의를 맺은 국가다.
어느 정도 예상된 움직임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상호관세가 무효화되자, 150일 동안 적용 가능한 무역법 122조에 근거한 10% 글로벌 관세로 시간을 번 뒤, 불공정 무역을 이유로 국가별로 관세율을 차등할 수 있는 무역법 301조 체계로 전환을 ‘플랜B’로 삼고 있다. USTR도 글로벌 관세 적용 기한이 끝나기 전인 7월 중순까지 조사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문제는 조사 분야다. USTR은 제조업 분야의 과잉 생산을 조사 사유로 들고 있다. 과잉 생산으로 조사 대상국은 구조적인 대미 무역 흑자를 누리는 반면, 미국의 제조업 기반이 흔들린다는 주장이다. 과잉 생산 분야에는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인 자동차·반도체·조선·철강·화학 등이 대거 망라됐다.
USTR은 한국에 대해 “지속적인 무역 흑자를 통해 구조적 과잉 생산의 증거가 나타나고 있다”며 “한국 정부는 석유화학 산업에 생산능력 축소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은 기존 무역 합의의 관세 수준인 15%를 적용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긴급 브리핑을 통해 “301조 조사는 한국을 타깃으로 한 게 아니다”며 “미 대법원 판결 이전의 기존 관세를 복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도 이날 “합의는 그대로 유지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 상당수가 조사 대상에 포함된 점은 부담 요인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자동차와 조선은 이미 대미 투자가 진행되고 있어 압박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지만, 철강과 석유화학은 글로벌 공급 과잉이 있어 타깃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측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 온 비관세 장벽도 변수로 꼽힌다. 그리어 대표는 “디지털 서비스세와 쌀 시장 접근성 등이 추가 조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쿠팡 등 미국 기업 차별 문제를 제기하며 압박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병일 법무법인 태평양 통상전략혁신허브 원장은 “미국이 301조 조사를 무기로 비관세 장벽을 허물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는 이날 대미투자특별법을 본회의에서 처리했다. 여 본부장은 “기존 미국과 합의를 했던 내용을 어기거나 무시하고 다른 방향으로 나가는 국가가 있다면 관세가 더 인상될 가능성도 배제 못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