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가 주유소 등에 공급하는 석유제품 가격을 제한하는 조치가 내일부터 시행된다. 중동 사태 이후 급등한 기름값 안정을 위한 조치다.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29년 만에 정부가 기름값에 직접 개입하는 대책이다. 정부는 또 정유사들이 물량을 해외로 돌리지 못하도록 수출량을 제한하고, 매점매석도 금지한다.
12일 산업통상부는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석유제품 가격 안정 방안’을 발표했다. 최고가격제 관련 고시를 이날 제정해 자정부터 즉시 시행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일 국무회의에서 “갑자기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폭등했다”며 최고가격 지정을 지시한 지 일주일 만이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날 오후 서울 주유소 평균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중동 사태 이전(지난달 27일) 대비 각각 10%, 16% 오른 L당 1927원, 1936원이었다.
최고가격제는 정유사가 휘발유(보통)·경유·등유 등을 주유소에 공급할 때 받는 가격에 상한을 두는 방식으로 시행된다. 전국 1만여 개 주유소의 판매가격은 지역별, 운영 방식별로 편차가 커 통제가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4개 정유사의 공급가격을 규제하기로 했다.
최고가격은 현재 정유 4사의 평균 공급가격인 휘발유 1833원, 경유 1930원, 등유 1730원 등보다 낮은 수준으로 설정할 계획이다. 정부가 마련한 계산 방식에 따라 산출했다. 전쟁 발발 이전인 지난달 넷째 주 정유사 공급가격(세전)에 국제 석유제품 기준가격인 싱가포르 현물시장 가격(MOPS)의 최근 몇 주간 상승률을 곱한 뒤, 각종 세금을 더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유가 반영 시차 등을 고려해 2주마다 최고가격을 재설정하되, 필요하면 조정 주기를 바꿀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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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 부족’ 대비 수출 제한, 매점매석 금지
최고가격제를 해제하는 명확한 시점이나 기준 가격선은 정하지 않았다. 양기욱 산업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중동 지역의 정세 불안이라는 요인이 아직 존재하기 때문에 언제 해제한다고 말하긴 어렵다”며 “중동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유가가 안정됐다고 판단하면 해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11일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국회 재경위 전체회의에서 해제 기준선 예시로 ‘휘발유 기준 L당 1800원’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양 실장은 “‘가격이 1800원 이하로 떨어지는 것’ 등을 요건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는 가격을 통제받은 정유사들이 물량을 해외로 과도하게 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 수출량을 지난해 같은 기간 수준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기로 했다. 물량을 쌓아두는 매점매석도 고시를 통해 금지한다. 매점매석 금지 고시는 오는 5월까지 두 달간 시행 후 필요 시 연장하기로 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수요가 몰릴 가능성에 대비해 매점매석 고시를 두 달로 길게 잡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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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사 손실은 사후 정산…‘폭리 주유소’ 공표
가격 통제로 발생하는 정유사 손실은 정부가 분기 단위로 사후 보전한다. 각 정유사가 원가 등을 반영해 손실액을 자체 산정해 공인 회계법인의 심사를 거쳐 정산을 요청하면, 정부는 회계 전문가 등으로 꾸린 ‘최고액 정산위원회’를 통해 검증 후 정산한다.
주유소가 판매가격을 과하게 올리거나 매점매석하는 행위를 막기 위한 모니터링 체계도 운영한다. 소비자단체 등 중립적인 기관을 활용해 판매가격과 물량 흐름을 감시해, 매점매석이 의심되거나 판매가 상승률이 상위 30개 해당하는 주유소를 공표하는 방식 등을 검토 중이다. 두 차례 공표 대상이 되면 담합·세무 관련 범부처 조사를 진행해 결과에 따라 과태료·영업정지 등 법적 조치에 들어간다.
양기욱 실장은 “최고가격이 공개되면 소비자들이 예전보다 직관적으로 마진을 과하게 받는 주유소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가격이 과하게 튀는 곳들에 대해선 계속 강화된 단속을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