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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완의 마켓 나우] 머스크의 서사, 카프의 축적

중앙일보

2026.03.12 08:04 2026.03.12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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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완 서정대학교 스마트자동차학과 및 미래자동차석사과정 교수
팔란티어라는 회사명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마법 구슬 ‘팔란티르’에서 유래했다. 멀리 떨어진 사건을 비추는 팔란티르처럼, 데이터로 세상의 흐름을 통찰하겠다는 기업 철학을 담았다.

2003년 창업 당시 팔란티어는 검색·광고·소셜네트워크 대신 데이터 통합과 위협 예측의 길을 택했다. 9·11 이후 테러 분석 플랫폼을 갈구하던 미국 정부의 수요가 결정적 성장 토양이 됐다.

핵심 제품인 ‘고담’은 파편화된 데이터를 하나의 구조로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개념들 사이의 관계를 구조화하는 ‘온톨로지(ontology)’를 기반으로 정보를 통합해 최적의 의사결정을 돕는다.

고담의 진가는 AI를 다루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챗GPT나 제미나이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은 필요에 따라 연결되는 엔진일 뿐, 교체 가능한 부품에 가깝다. 팔란티어의 경쟁력은 개별 모델의 성능이 아니라, 다양한 정보 자산을 통합·지휘하는 ‘구조’ 그 자체에 있다.

이 견고함은 투자 시장에서 ‘상상력의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여기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와 팔란티어의 알렉스 카프가 극명하게 대비된다. 머스크는 자율주행·로보택시·휴머노이드·화성 이주 같은 거대 서사를 끊임없이 투척하며 시장과 소통한다. 테슬라의 기업 가치는 현재의 실적보다 미래의 가능성에 의해 움직인다.

물론 서사가 늘 현실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전기차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고 휴머노이드 분야도 기술 평준화가 진행 중이다. 결국 시장은 기술 완성도와 가격 경쟁력이라는 냉혹한 잣대로 테슬라를 평가할 것이다. 반면 카프의 접근은 지독할 정도로 절제되어 있다. 선언보다 축적에, 자극보다 반복에 집중하며 정부 기관과 대기업 내 점유율을 조용히 넓혀간다. 팔란티어 모델은 고객이 늘수록 데이터와 사례가 쌓여 플랫폼이 정교해지고, 동시에 고객의 이탈 비용을 높여 ‘고착성’을 강화하는 구조다.

제조 역량과 브랜드 리더십을 앞세워 가치를 확장하는 테슬라와 데이터 축적으로 성벽을 쌓는 팔란티어 중 누가 최후에 웃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시장은 대개 화려한 서사에 먼저 반응하고, 머스크는 그 기대를 동력으로 활용한다. 반면 카프는 시장의 소음에서 벗어나 플랫폼의 밀도를 높이는 데 주력한다.

결국 두 기업의 차이는 ‘평가 시점’에 있다. 서사는 지금의 시장을 움직이지만, 축적의 힘은 시간이 흐를수록 증명된다. 역사는 화려한 약속을 남긴 이보다 고요히 세상을 지휘하는 구조를 세운 이를 더 늦게, 그러나 더 또렷하게 기억할지도 모른다.

박철완 서정대학교 스마트자동차학과 및 미래자동차석사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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