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이도가 높은 삶을 살며 그 안에서 지혜를 길어 올린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특유의 힘과 깊이가 있습니다. 심리학적으로도 적당한 좌절을 경험하며 자기 결함을 마주하고, 이를 다루기 위한 자기만의 원천 기술을 갈고닦는 것은 실로 중요하고 의미 있는 과업입니다.
그러나 자기 안의 못나 보이는 모습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도리어 자신을 해칠 정도로 과도한 경우가 있습니다. 높은 기준을 세우고 과도하게 애를 쓰느라 자꾸 힘이 들어갑니다. 자신과 타인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져도 되는데, 좀처럼 경계를 늦추지 못합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생각과 감정을 편히 바라보지를 못하고 자꾸만 어깃장을 놓고 반기를 듭니다. ‘아닌데요?’가 말 습관이 됩니다. 우리의 나쁜 대처 전략 중 ‘과잉보상(overcompensation)’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잠깐, ‘난 아닌데?’라 단정하지 마시고 조금만 더 읽어 주세요. 누구에게나 있는 모습이니까요!).
동기부여 지나치면 마음 폐허 돼
과한 초연함도 일종의 과잉보상
근육의 힘 빼고 다정한 말 건네야
과잉보상은 개인이 극복하려는 주제에 따라 그 모습이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고 늘 환영하게 만들겠어’라며 대인관계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고 감정 노동을 자처하는 것이 흔한 과잉보상 전략입니다. ‘꼭 남보란 듯 성공해 보일 거야’ ‘저 사람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라며 성공이나 돈, 지위에 골몰하고 타인에 가혹한 평가를 내리는 것 역시 자신의 실패나 열패감을 감추려는 전략입니다. 마음 깊은 부정적인 감정에 맞서 싸우려, 매사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세상 낙관적이고 초연한 말들로 일관하는 것도 독특한 과잉보상의 형태입니다.
이렇게 과도한 투쟁 뒤에는 개인의 역사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쉽지 않았으니까. 늘 방어하고 이겨내야 했으니까. 세상에서 믿을 이는 없고, 실제로 나는 그렇게 많은 것들을 이루어 왔으니까. 이는 일견 삶의 에너지나 동기부여처럼도 보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종국엔 나를 해치는 전략임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다양한 과잉보상 전략을 휘황찬란하게 두르며 지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 이 전략이 건강한 자기계발과 구분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어떤 전략을 사용하면 할수록, 애초에 극복하려던 생각과 감정에 역설적으로 더 몰두하게 된다면 이는 과잉보상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 마음의 중심은 온통 내가 싸워서 이겨내야만 하는 숙제들로 가득합니다. 나의 성장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자꾸만 지치고 공허한 마음이 듭니다.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버텨 왔는데’ 하는 마음에,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에 점점 혐오감과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세상을 선과 악, 흑과 백, 내 편과 남의 편으로 나누기를 반복하며 마음은 폐허가 됩니다.
잠시, 우리 몸을 돌아봐 주세요. 이 글을 읽는 동안 어느새 몸에 잔뜩 들어간 힘을 알아차리세요. 몸의 어느 부분에 가장 긴장이 높아져 있나요. 어깨, 목, 허리, 혹은 손가락 마디마디. 나도 모르게 힘을 주고 있는 곳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긴장감은 언젠가 통증으로 돌아옵니다. 이제, 나의 못난 모습이 자꾸만 튀어나올 때 내가 무기처럼 꺼내 드는 여러 기술 중에서, 유독 힘이 들어가는 기술은 무엇인지 살펴보세요. 어떤 행동을 할 때 자꾸만 부담스럽고 아파지나요? 사용할수록 엉켜버리는 과잉보상 전략들을 이제 알아차리고, 천천히 시간을 두어 내려두세요. 대신 힘 빼기의 기술을 챙겨 주세요.
오늘은 몇 가지 힘 빼는 방법을 알려 드립니다. 첫째, 자신과 타인에게 자비를 가져오는 말 습관을 하나 만들어 주세요. ‘아닌데?’ 말고 ‘그런가? 그럴 수도 있지’로 조금씩 바꿔 가세요. 모든 것을 문제 삼기보다, 문제가 아니게 무력화시키세요. 둘째, 마음에 여러 감정의 폭풍이 몰려올 때, 홍콩 무협 영화의 고수처럼 행동하세요. 느리고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자기 안의 고요한 중심을 찾으세요. 셋째, 내가 생각해도 참 절묘하고 지혜롭다 싶은, 나만의 원천 기술을 다시 추리세요. 나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다른 사람을, 세상을 어떻게 다정하게 대하나요? 그 방법들을 적어주세요. 마지막,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이제 자신에게 들려주세요. ‘나는 내가 참 짠해, 그동안 고생했어.’ 자, 이제 몸과 마음에 들어간 힘을 천천히, 내려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