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장혜수의 뉴스터치] 토크빌의 역설

중앙일보

2026.03.12 08:08 2026.03.12 13:31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장혜수 선임기자
지난 2012년 말, 당시 중국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왕치산이 반부패를 주제로 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참석자에게 “요즘 포스트 자본주의 시대 책을 많이 보는데 그 이전 시기 것도 봐야 한다”며 프랑스 정치철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이 1856년에 쓴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중국어판 『구체제와 대혁명』)을 한 권씩 돌렸다. 당시는 후진타오에서 시진핑으로, 중국의 권력 이양기였다.

“혁명이란 반드시 사태가 악화되는 과정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압제적인 정부 아래에서도 마치 아무것도 느끼지도 못하는 듯이 별 불평 없이 잘 참아내던 사람들이 그 압력이 완화되는 순간, 정부에 격렬하게 저항하는 경우가 흔하게 발생한다. 따라서 혁명으로 파괴된 체제는 대개 바로 그에 앞선 체제보다 더 낫기 마련이다. (…) 한때는 불가피한 것으로 체념하고 감내하던 폭정도 일단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즉시,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억압으로 여겨지게 된다.”(이용재 번역본, 308~309쪽)

정치철학의 고전적 명제인 토크빌의 역설(Tocqueville Paradox, 또는 토크빌 효과)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역사는 이 역설을 증명해왔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폭정의 절정기가 아닌 루이 16세의 개혁기 때 일어났다. 1980년대 후반 동유럽 공산권 붕괴, 2010년대 초반 아랍의 봄 등도 개혁 시도가 억눌린 요구 폭발의 계기가 된 역사 속 또 다른 사례다.

사용자 정의를 확대하고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는 내용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법률, 일명 노란봉투법이 10일 시행됐다. 첫날 하청 노조 407곳이 원청 사업장 221곳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는 등 억눌렸던 권리를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그런 모습이 1987년 6월 민주 항쟁 직후 뜨거웠던 노동자 대투쟁의 데자뷔 같기도 하다. 토크빌의 역설이 주는 진정한 교훈은 개혁의 속도와 기대의 속도 사이 괴리를 어떻게든 좁혀야 한다는 거다. 그건 노동자나 사용자, 정부만이 아닌 모두의 숙제다.





장혜수([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