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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제 칼럼] 한국의 성공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중앙일보

2026.03.12 08:16 2026.03.12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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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1963년 10월 대통령선거에서 야당의 윤보선 후보는 454만 6614표(득표율 45.1%)를 얻어, 군정을 끝내고 민정에 참여하기로 한 박정희 후보가 얻은 470만 2640표(득표율 46.6%)에 15만 6000표라는 근소한 차로 석패했다. 기독교계 원로들이 모두 나서서 외무부장관 출신 변영태 후보의 사퇴를 권했으나 그는 끝까지 자신의 인기를 믿고 완주해 22만 4000여표를 얻었는데, 대부분 당시 야당지지표였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그때 변영태 후보가 사퇴했더라면 한국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 왔을까? 당시 박정희 후보는 46세로서 윤보선 후보보다 20세가 젊었다. 윤보선 후보가 조선시대 사대부 양반가 출신이었던 데 비해 박정희 후보는 경북 구미의 빈한한 소작농가 출신이었다. 그 후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는 우리가 아는 바다.

국민들의 작은 행위들이 모아져
역사의 큰 강물을 이루며 흘러와
지금 우리가 서있는 곳은 분수령
정치에 젖줄 대는 국민이 물길 정해

보다 가까이는 이인제 후보가 1997년 대선에서 사퇴했더라면? 심상정 후보가 2022년 대선에서 사퇴했더라면? 역사는 그렇게 흐른다. 작은 차이가 큰 차이로 굳어지며 역사는 흐른다. 작은 분수령들을 거치며, 물이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흘러갈 수 있었지만 그 물은 왠지 그 방향으로 흘러와 시내를 이루고, 강을 이루며 오늘을 흘러오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았을 때 그 것이 운명이었다고 해야 할까, 또는 대중의 힘과 민족의 업과 시대환경이 뭉쳐진 필연이었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그 흐름들이 이어져 우리는 오늘을 산다. 지금도 훗날 역사의 가정을 상상해 볼 일들이 우리에게는 일어나고 있다. 그 만큼 우리가 선택하는 하나 하나의 오늘의 결정들이 모여져 우리가 몸담고 사는 국가와 사회의 물줄기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약 70년 대한민국은 세계사에 일찍이 찾아볼 수 없었던 압축적 성장을 이뤄냈다. 이는 경제뿐 아니라 민주화, 문화발전의 면에서도 그랬다. 지난 70년간 대한민국이 이룩한 기적과 같은 이 성공은 역사의 우연이 가져온 결과인가, 아니면 필연이 가져온 결과인가? 만약 후자라면 우리는 우리 국민의 저력을 지목할 수밖에 없다. 1953년 프랑스 르몽드지가 ‘한국은 국가가 아니고 원조로 연명하는 거대한 난민촌’, 1954년 미국 타임지가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하게 파괴된 나라’라고 표현했던 그 나라가 전쟁의 잿더미를 딛고 일어섰다. 1979년 2차 오일쇼크, 박정희 대통령 시해로 정치혼란, 경제위기가 왔을 때 해외기자들은 이제 한국은 정체의 길로 들어설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국가예산과 임금을 동결하며 경제안정화를 이뤄내고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뤘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는 ‘한국이 국제적 구걸꾼으로 전락했다’고 썼다. 그러나 금 모으기로, 대대적 기업금융 구조조정으로 한국은 다시 일어서서 오늘에 이르렀다. 난데없던 비상계엄사태도 성숙하게 극복해오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 사회와 정치적 논쟁을 보며 지난 70여년간의 성공은 필연인가, 아니면 우연인가를 다시 묻게 된다. 보수 야당은 시대흐름을 잃고 미망에 빠져 있다. 진보 여당은 가진 힘에 비해 숙려가 부족하다. 지금 우리 국가지배구조에서 전반적으로 결여되어있는 것은 장기적 시각과 합리적 토론 과정이다. 우리의 진보와 보수 구도는 서구와는 달리 추구하는 가치와 정책의 차이에서 갈라져 나왔다기보다 과거체제와 북한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중심에 서있다. 지난 수 차례 대선 과정들에서 드러났듯이 보수와 진보 양대 정당의 정책적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양당은 사사건건 사생결단식 언어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금 한국이 서있는 지점은 또 다른 분수령이다. 세계는 이미 대전환기에 들어섰고, 국제질서는 요동치고 있으며 인류문명을 바꿀 AI·디지털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혼돈과 불안이 짙어져 가는 이 세상에서 지금 우리가 하는 하나 하나의 선택과 대응이 우리의 미래 입지와 운명을 바꾸게 될 것이다. 전환의 시대에 한치라도 앞서 나가는 나라는 수 세대에 걸친 입지를 구축하게 되고, 뒤떨어지면 만회의 기회는 역사 책의 한 장이 넘어간 뒤에나 가능할 지 모른다. 우리는 다시 역사의 필연을 믿을 것인가? 그렇다면 남은 21세기 우리의 필연은 어떤 형식과 양태로 나타날 것인가?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국가지배구조 재구성과 국민 집단지성의 성장, 새로운 사회기풍의 함양으로만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적어도 오늘날 SNS나 정치현장에서 오가는 언어의 순화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험한 언어는 지성을 흐리고, 사회의 기운을 흩트린다. 격변의 시대를 헤쳐 나가려면 정치를 탓할 것만 아니라 정치에 젖줄을 대고 있는 우리 국민들이 관용과 절제, 포용과 배려로 통합과 협력의 기풍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배타적 문화의 국가가 융성한 역사는 없다.

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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