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최고가격제부터 담합 의혹 조사, 횡재세 법안 재등장까지. 중동 사태로 급등한 기름값을 안정시키기 위한 정부·여당 움직임에 국내 정유사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12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13일 0시부터 석유 최고가격제가 시행된다. 1차 최고가격은 L당 보통휘발유 1724원, 자동차용 경유 1713원, 등유 1320원으로 설정됐다. 지난 11일 정유사가 제출한 평균 공급가격에 비해 보통휘발유는 109원, 경유는 218원, 등유는 408원 낮은 가격이다. 최고가격은 2주마다 재설정한다.
특히 석유제품 수출도 지난해 같은 기간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국내 가격이 낮아질 경우 정유사들이 해외로 물량을 돌릴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정유업계는 ‘정부 정책에 성실히 따르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이다. 대한석유협회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정유 4사는 중동 정세 불안 장기화에 대비해 국가 경제 및 국민 체감 물가 부담 완화를 위해 최고가격제 등 정부의 유가안정 대책에 충실히 동참하며 국내 석유제품 안정공급에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속내는 복잡하다. 여당에선 유가 변동성으로 발생한 초과 이익에 추가로 과세하는 ‘횡재세’ 법안까지 재발의한 상황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국제유가가 오르는 만큼 최종 제품 가격에서 원가를 제외한 ‘정제마진’이 개선돼 정유사 영업이익이 늘어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에선 정유 4사를 대상으로 담합 의혹 조사까지 들어가면서 압박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건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제유가가 오르면 정제마진도 커지는 건 사실이지만, 더 중요한 건 변동성”이라며 “유가가 완만하게 올라야 중장기적인 경영계획을 세울 수 있는데, 지금처럼 돌발 이슈로 단기적으로 급등하는 건 오히려 불확실성만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호르무즈 해협)봉쇄가 장기화할수록 원유 공급 자체에 차질이 빚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정유사가 입는 손실에 대해선 사후적으로 보전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회사별로 자체 원가 등을 감안해 손실액을 산정한 뒤 공인회계법인 심사를 거쳐 정산을 요청할 수 있다. 이후 정부는 ‘최고액 정산위원회’를 통해 정유사가 제출한 손실액을 검증한 뒤 정산할 계획이다.
다만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한정된 예산으로 손실 보전이 온전히 이뤄질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도 나온다. 무엇보다 손실 입증 책임이 정유사에 있는데, 정부가 어느 수준까지 보전해줄지 구체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재원 규모도 아직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다.
손실 검증 과정에서 오히려 행정 비용이 과도하게 늘어날 수도 있다. 정부는 회계·법률·교수 등 석유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해 검증하겠다는 계획인데, 이에 따른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을 수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정유사가 정산한 금액을 그대로 다 내줄 수 없기 때문에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데, 과거 비슷한 원가 검증 작업에선 20~30명에 달하는 전문가가 붙어 수개월이 걸렸다. 이번에도 비슷하게 걸릴 가능성이 크다”며 “유류세 인하보다 더 많은 세금이 투입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예산으로 보전하는 만큼 자가용이 없거나 전기차를 타는 등 휘발유·경유를 구입하지 않는 국민과의 형평성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가격 통제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도입 초기에 사재기 등 초과수요가 몰릴 가능성이 있고, 최고가격이 일종의 ‘기준점’이 돼 시장 가격이 오히려 상향평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한국은행은 최고가격제와 관련해 “소비자 부담을 일시적으로 줄여준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가 있다”면서도 “도입 기간이 길어질수록 초과수요 발생 등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