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여성 역사의 달’ 기념식에서 이란에 대해 “그들은 테러와 증오의 국가로, 지금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며 공습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도 “상황이 매우 빠르게 전개되고 있고, 매우 잘 진행되고 있다”며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발언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앞서 소셜미디어(SNS)에 이란 전쟁의 여파로 인한 국제유가 급등에 대해 “유가가 오르면 미국은 큰 돈을 번다”고 주장하며 부정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
휘발유 가격 폭등에…“아주 작은 대가”
이날 공개된 파이낸셜타임스(FT)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0%가 이란에 대한 군사 작전이 시작된 이후 휘발유 가격이 올랐다고 답했다. 그리고 유가 인상의 원인으로는 48%가 트럼프 대통령을 지목했다. 전미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이날 미국의 휘발유 가격 평균은 갤런당 3.6달러까지 치솟았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12일 연속 상승세로, 전쟁으로 인한 상승폭은 20%를 넘어섰다.
미국 정치권에선 유권자들이 인내할 수 있는 유가의 임계치를 갤런당 3.5달러로 본다. 전임 바이든 정부 때 급등했던 물가를 비판하며 백악관 재입성에 성공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선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최악의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SNS에 “이란 핵 위협의 파괴가 끝나면 급격히 하락할 단기 유가는 미국과 세계, 안전과 평화를 위한 아주 작은 대가”라며 유가 인상에 따른 반발 여론을 대수롭지 않게 표현했고, 이날 재차 “미국은 세계 최대의 원유 생산국”이라며 “유가가 오르면 우리는 큰 돈을 번다”는 여론과 동떨어진 주장을 이어갔다.
━
“모두를 희생시킨 억만장자를 위한 전쟁”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이날 자신의 블로그에 “트럼프 대통령이 석유 가격을 두 배로 올리는 무모한 전쟁을 하더라도, 전쟁으로 돈을 버는 억만장자들은 리무진과 요트에 들어가는 기름값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며 “또 (전쟁에 파병돼) 중동의 벙커에 숨어야 하는 건 그들의 자녀들이 아닐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란 공습에 매일 20억 달러를 쏟아부으며 아이들의 의료 혜택을 뺏고, 요양원 직원을 해고하고, 데이터 센터 때문에 가정용 전기 요금을 폭등시키는 상황을 이해하려면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피해는 보는지 생각해야 한다”며 “이 전쟁은 모든 사람들을 희생시키며 벌이는 억만장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역시 노벨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도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물가는 일차적으로 관세 탓에, 그리고 이제 전쟁 탓에 상승 중인 반면 성장세는 둔화하고 있다”며 “전쟁의 여파로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 침체) 위험에 직면했다”고 경고했다.
━
증폭되는 공포…유가 이은 테러 패닉
이란과의 전쟁으로 유가 부담이 현실화한 가운데 이날 미국에선 이슬람 세력의 테러로 의심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이날 오전 버지니아주 노퍽에 위치한 올드도미니언대학교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미군 1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을 입었다. 총격을 가한 용의자는 2016년 이슬람국가(IS)에 물적 지원을 제공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모하메드 잘로로 확인됐다. 그는 총격 직전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친 뒤 강의실에 총격을 가했다.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인근 웨스트블룸필드에선 한 남성이 폭발물을 실은 트럭을 몰고 유대교 회당으로 돌진했다. 유치원 어린이 140명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큰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사살된 용의자의 차량은 레바논 출신의 귀화 미국인 소유로 파악됐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그의 친척들은 이번 전쟁 기간 레바논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 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
“반격 ‘지렛대’ 활용”…핵심은 호르무즈와 테러
미국과의 정면 대결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결사항전을 고수하고 있는 이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장 취약한 유가와 테러에 대한 공포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공식화했다.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아야톨라 세예드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이날 국영TV를 통해 대독 형식으로 발표된 첫 공식 성명에서 “적(미국·이스라엘)을 압박하는 수단으로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지렛대를 계속 사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모즈타바는 이어 “적이 경험하지 못 했고 취약한 ‘제2의 전선’을 형성하는 것에 대한 검토가 끝났다”며 “전쟁 상황과 국익에 따라 이를 즉각 활성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비대칭 전력이나 제3지역 게릴라전은 물론 미국 본토에서의 테러까지 염두에 둔 말로 해석된다.
그는 특히 공습으로 인한 사망을 순교라고 지칭하며 이슬람 전역을 향해 종교적 과업에 따른 보복에 나설 것을 종용했다. 그러면서 “적에게 보상을 얻어내야 한다. 그들이 보상을 거부하면 그들의 자산을 똑같이 빼앗고 쳐부술 것”이라고 했다.
━
“유가 200달러 각오해야”…‘존스법’도 유예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를 무기화하려는 이란의 움직임이 복격화되면서 이날 국제 유가의 기준이 되는 브렌트유 선물은 9.22% 급등한 배럴당 100.46달러를 기록했다. 국제 유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조기 종전 가능성’을 시사하자 80달러선까지 내려왔지만,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장기 봉쇄가 현실화되면서 재차 100달러를 넘어섰다.
우드 맥켄지의 사이먼 플라워스 회장은 이란군 사령부가 “국제사회가 유가 200달러 시대를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과 관련 “중동 생산 시설 복구에 걸릴 시간 등을 고려하면 올해 유가가 정말 200달러에 도달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전망했다.
“미국은 돈을 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논란 속에서도 미국 행정부는 유가 급등을 막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미국은 동맹국들을 설득해 역대 최대 규모인 4억 배럴의 전략 비축유 방출을 이끌어냈다. 또 해상에 묶여 있는 러시아산 원유 거래를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조치까지 허가했다. 그러나 페르시아만에서 하루에 최대 1500만 배럴의 원유를 공급해 왔고, 전세계가 하루에 소비하는 원유가 1억 배럴이란 점을 감안하면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미국 내 항구 간 화물 운송을 미국 선박으로만 제한한 존스법을 30일간 유예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미국 조선업체의 강한 반대까지 묵살한 비상 조치다. 그러나 해당 조치로 달성될 유가 하락분은 배럴당 최대 80센트 가량에 불과할 거란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