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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계속 봉쇄’…위기의 석화업계, 잇따라 '불가항력 가능성'

중앙일보

2026.03.12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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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야경. 사진 여수시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장기 봉쇄 의지에 석유화학 핵심 원료인 나프타 수급에 빨간불이 커졌다.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아야톨라 세예드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12일(현지시간) 국영TV를 통한 첫 공식 성명에서 “적(미국·이스라엘)을 압박하는 수단으로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지렛대를 계속 사용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해협 봉쇄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이다.

중동에서 나프타를 수급할 길이 막힌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불안감은 더 커졌다. 고객사에 제품 공급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불가항력(Force Majeure·포스마주르)’을 선언하는 기업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불가항력은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 기업이 통제할 수 없는 요인으로 계약 이행이 어려워질 때 취하는 조치로, 불가항력이 인정되면 책임을 면제받을 수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까지 여천NCC가 고객사에 불가항력을 통보했고,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이 일부 제품 ‘불가항력 가능성’을 통보했다. GS칼텍스 등 정유 사업을 함께 운영하는 곳은 원유 정제 과정에서 생산한 나프타를 활용할 수 있어 좀 더 상황이 낫지만, 호르무즈 봉쇄가 장기화되면 나프타는 물론 원유 수급도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정근영 디자이너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나프타 수입 물량 대부분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나프타의 75% 이상을 중동에서 수입하는데, 특히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야 하는 국가에서 53.8%를 수입하고 있다. 국가별로 보면 아랍에미리트(UAE)가 23.5%로 가장 많고, 카타르(12.6%)·쿠웨이트(12.6%)·이라크(4.3%)·바레인(2.7%)·사우디아라비아(1.9%) 순이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나프타는 플라스틱, 합성섬유, 고무 등 석유화학 기초소재의 핵심 원료다.

업계에선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4월 전에 풀리지 않을 경우 공장 중단 사태까지 우려하고 있다. 한 석유화학 업체 관계자는 “통상 업체들은 나프타를 한달치 정도 비축하고 있는데, 이미 전쟁이 2주 지났기 때문에 남은 물량은 1~2주치에 불과하다”며 “원유 비축분까지 정제해 나프타를 수급한다고 해도 오래 버티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도 “봉쇄가 풀린다고 해서 곧바로 원료가 수급되는 게 아니라 발주하고 운송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생산 차질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했다.

박경민 기자
지난해부터 정부 주도로 구조조정이 한창인 석유화학 업계로서는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도 어렵다. 이미 업계는 기업간 합병과 나프타분해시설(NCC) 감축을 시작해 제품 생산량을 줄이고 있었다. 에틸렌 등 석유화학 제품 생산이 끊기면 플라스틱, 고무 등을 활용하는 제조업 전반으로 연쇄 충격이 일어날 수 있다.

사태는 국내 뿐 아니라 아시아 석유화학사업 전반으로 확산 중이다. 이미 인도네시아 최대 석유화학 기업인 찬드라 아스리, 싱가포르 석유화학공사도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글로벌 석유화학,에너지 리서치 기관인 ICIS는 “아시아 석유화학 산업은 위험할 정도로 집중된 원료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다”며 “이란 위기는 일회성 충격이 아닌 구조적 경고”라고 지적했다.



남윤서.나상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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