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거의 2주째로 접어든 가운데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취임 후 첫 대국민 연설을 내고, ‘피의 복수’를 다짐하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언급하는 등 강경 노선을 선명히 했다. 반면 이스라엘이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운 정권 전복 목표는 현실적 제약에 부딪히고 있다는 외신 분석이 나온다.
지난 8일(현지시간) 후계자로 선출된 모즈타바는 나흘 만인 12일 국영TV를 통해 연설문을 전했다. 이날 메시지는 앵커가 대독했으며 모즈타바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달 28일 공습 당시 부상을 입은 이후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순교자들의 피에 대한 복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지렛대”를 계속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 에너지 수송의 핵심 통로를 압박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실제 호르무즈 해협과 인근 해역에서는 유조선을 겨냥한 공격이 이어지고 있으며 영국해사무역기구(UKMTO)에 따르면 최근 페르시아만에서 선박들이 잇따라 미확인 발사체 공격을 받은 것으로 보고됐다. 아울러 12일부터 소형 선박을 이용해 호르무즈 해협에 기뢰 부설을 시작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영국 국방부도 관련 보고가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며 실제 부설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고,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이미 최소 10개의 기뢰가 설치됐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뢰 설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며 선박 통항은 계속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모즈타바는 또 연설에서 “전쟁 상황이 지속된다면 적이 경험이 부족하고 취약한 다른 전선도 열 준비가 돼 있다”며 중동 전역으로 충돌이 확대될 가능성도 시사했다.
그의 강경 메시지는 같은 날 신설된 공식 X(옛 트위터) 계정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순교자들의 피에 대한 복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을 모두에게 확언한다”고 밝히며 보복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첫 게시물에는 모즈타바가 거울을 통해 아버지인 알리 하메네이로부터 이란 국기를 전달받는 그림과 함께 “지도력 전문가 회의의 만장일치로 모즈타바를 세 번째 지도자로 임명하고 소개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다만 모즈타바의 강경 행보에도 그가 곧바로 카리스마 있는 전시 지도자로 자리 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동연구소의 알렉스 바탄카 선임연구원은 그가 첫 성명에서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데 대해 “아직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카타르 매체 알자지라에 말했다. 그는 또 이번 메시지에 대해 “아버지의 노선을 계승하는 성격이 강하다”며 당장은 변화보다는 체제 연속성과 저항을 강조하는 단계라고 분석했다. 다만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의 관계 속에서 권력 기반이 재편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흐름은 친이란 무장세력 움직임에서도 나타난다. 로이터에 따르면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 등 ‘저항의 축’ 세력은 최근 공격 수위를 높이며 이란의 전쟁 전략을 측면 지원하고 있다. 헤즈볼라는 약 200발의 로켓을 이스라엘을 향해 발사했고, 이라크에서는 미군 및 미국 관련 시설을 겨냥한 드론과 미사일 공격이 증가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라크 내 이탈리아 군 기지와 프랑스군 기지도 공격 받았다. 로이터에 따르면 두 공격에서 프랑스군 1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번 전쟁에서 유럽 병력 중 첫 사망자가 나온 것이다.
반면 이스라엘의 계산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스라엘 당국이 당장 체제 붕괴를 노리기보다는 이란의 군사력과 미사일 역량을 약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조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현재 이란 지도부가 여전히 기능을 유지하고 있으며 반정부 세력도 강한 통제 속에 있어 단기간에 정권 붕괴가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도 덧붙였다. 전쟁이 목표했던 정치적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수주 또는 수개월의 추가 전투가 필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나다브 쇼샤니 이스라엘군 대변인 역시 이날 “군의 임무는 위협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고 강조하며 정권 교체 문제와는 거리를 두는 듯한 발언을 내놓았다.
미국의 행보도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강경한 군사 작전을 선호하는 이스라엘과 달리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은 거의 승리한 상태”라는 입장을 밝히며 조기 종전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이란의 에너지 시설 공격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 정치전문매체 악시오스는 “사실상 이스라엘의 공격 범위를 제한하려는 첫 신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개전 이후 처음 열린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이란 정권 전복 목표를 재차 강조했다. 그는 지난달 28일부터 이어진 공격으로 이란이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며 혁명수비대와 민병대 바시지가 큰 타격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오전 이스라엘군은 지난 24시간 동안 이란 중부·서부 지역의 목표물 200개 이상을 타격했다고 밝혔다.
네타냐후는 또 모즈타바를 겨냥해 “나 같으면 어떤 생명보험의 가입도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IRGC의 꼭두각시”라고 비난했다. 다만 네타냐후는 “우리는 정권을 전복시킬 조건을 만들고 있지만 이란 국민이 실제로 정권을 무너뜨릴지는 확실히 말할 수 없다”며 이란 시민들의 봉기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