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빠르게 후퇴하고 있다. 물가 상승 압력과 성장 둔화 압력이 맞물리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12일(현지시간)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보고서를 통해 “중동 전쟁이 세계 석유 시장에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급 차질을 초래하고 있다”고 밝혔다. IEA에 따르면 호르무즈해협 통항이 사실상 막히면서 걸프 지역 산유국들은 하루 최소 1000만 배럴 이상의 생산을 줄였다. 일부 산유국들의 증산을 고려하더라도, 3월 세계 원유 생산량은 하루 약 800만 배럴 감소할 전망이다. 이는 지난 2월(약 1억700만 배럴) 대비 7% 이상 줄어드는 규모다. IEA는 올해 전 세계 원유 공급 증가 전망치도 기존 하루 240만 배럴에서 110만 배럴로 크게 낮췄다.
유가 변동성도 커지고 있다.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이날 첫 공식 성명을 통해 “적(미국ㆍ이스라엘)을 압박하는 수단으로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지렛대를 계속 사용해야 한다”며 강경한 메시지를 내놨다. 이에 따라 이날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배럴당 100.46달러로 전장보다 9.2% 급등했다. 종가 기준 100달러 선을 넘은 것은 2022년 8월 이후 처음이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종가도 배럴당 95.73달러로 전장보다 9.7% 올랐다.
유가 급등은 통화정책도 제약한다. 휘발유가 오르면 운송비가 오르고 소비자 물가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전쟁이 길어지면 미국의 재정 지출 부담도 커진다. 실제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시장에서는 내년 3월 회의까지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 인하보다는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을 더 크게 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연말까지 두 차례의 0.25%포인트 금리 인하를 예상했던 금리 선물시장은 현재는 단 한 차례의 인하조차 불확실한 수준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짚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투자자들은 내년 여름까지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TD증권의 미국 금리 전략 책임자 제나디 골드버그는 “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동안 Fed가 금리를 인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장의 베팅이 반영된 결과”라며 “금리 인하 기대가 매우 급격하게 후퇴했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이유로 금리 인하 시점 전망을 기존 6월에서 9월로 늦췄다.
시장 금리도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에 민감한 2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이날 3.76%까지 올라(국채 가격은 하락) 지난해 8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도 4.27%로, 한 달여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미국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 침체) 경고음도 커지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지난 11일(현지 시각)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물가는 일차적으로 관세 탓에, 그리고 이제는 전쟁 탓에 상승 중인 반면 성장세는 둔화하고 있다”며 “증시 충격, 유가 충격, 식품 가격 충격, 관세 충격을 고려할 때 미국 경제는 매우 험난한 시기를 앞두고 있다”고 우려했다.
Fed가 오는 17~18일(현지시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멈출 가능성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소셜미디어에 “너무 늦는 Fed 의장 제롬 파월은 어디에 있느냐”며 “다음 회의를 기다리지 말고 즉시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고 압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