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정세가 강대강 대치로 치닫는 가운데 국제 유가가 이번 주 내내 롤러코스터 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루에도 10% 안팎의 급등락이 반복되면서 시장 불안이 커졌다. 그 여파로 원-달러 환율도 야간 거래에서 다시 1500원을 넘어서는 등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이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야간 거래에서 다시 장중 1500원을 넘어섰다. 환율은 이날 주간 거래에서 전 거래일보다 12.5원 오른 1493.7원에 마감한 뒤 상승 흐름을 이어갔고, 야간 거래에서 1500.65원까지 올랐다. 지난 3일 장중 1505.8원을 기록하며 2009년 3월 이후 약 17년 만에 1500원을 돌파한 데 이어, 7거래일 만에 다시 심리적 마지노선인 1500원 선을 넘어섰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도 이날 오후 100대를 돌파했다.
이는 중동 긴장 고조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위험회피 심리가 확대된 영향이 크다. 12일(현지시간) ICE선물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배럴당 100.46달러로 전장보다 9.2% 급등했다. 지난 9일 장중 100달러 선을 넘은 적 있지만, 종가가 100달러를 넘은 것은 2022년 8월 이후 약 3년 7개월 만에 처음이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도 9.7% 오른 배럴당 95.73달러에 마감했다.
이날 국제 유가는 중동 사태 소식에 따라 극심한 변동성을 보였다.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인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첫 성명에서 “적을 압박하는 수단으로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지렛대를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밝히며 시장은 실제 원유 수송 차질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이 해상 원유 운송 보호와 미군의 유조선 호위 가능성에 대해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아직 준비돼 있지 않다”고 말하며 공급 불안을 더욱 키웠다. 이에 WTI 가격은 장중 한때 97달러 선을 넘었다.
이번 주 내내 이런 흐름이다. 국제 유가 기준점(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브렌트유는 9일 장중 배럴당 120달러에 근접했다가 10일 90달러 밑으로 급락한 뒤 다시 반등해 100달러 선을 회복했다. 중동 지역 군사 충돌 가능성과 원유 공급 차질 우려가 부각될 때마다 유가가 급등하고, 긴장이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면 급락하는 등 지정학적 리스크에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이에 미국과 국제기구가 유가 안정 조치를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시장을 진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이날 국제 유가 안정을 위해 제재 대상이던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 제품의 구매를 30일간 허용하는 면허를 발급했다. 이에 따라 해상에 묶여 있던 러시아산 원유 약 1억2000만 배럴의 거래가 가능해졌다. 미국은 또 전략비축유(SPR) 1억7200만 배럴을 방출해 약 120일 동안 시장에 공급하겠다고 했다. 앞서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지난 11일 32개 회원국이 사상 최대 규모인 4억 배럴의 비상 비축유를 방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이라는 구조적 공급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으면서 유가 상승 압력을 막지 못하고 있다.
주요 투자은행(IB)도 유가 전망을 상향 조정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흐름 차질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올해 4분기 브렌트유 가격 전망치를 배럴당 66달러에서 71달러로, WTI 전망치는 62달러에서 67달러로 상향했다. 공급 차질이 심화하는 상방 시나리오에서는 3~4월 평균 가격이 11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내 금융시장도 중동 정세와 유가 급등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코스피는 하루 전보다 96.01포인트(1.72%) 하락한 5487.24로 거래를 마쳤다. 전날 대비 3.06% 낮은 5,412.39로 출발한 코스피는 개장 직후 5392.52까지 밀리기도 했다. 국고채 금리도 전 구간에서 상승했다. 특히 통화정책 향방에 민감한 3년물이 전일 대비 0.067%포인트 올라 연 3.338%를 기록했다. 만기별 국고채 가운데 상승 폭이 가장 컸다. 중동 사태로 에너지 가격 오름세가 이어질 경우 물가 상승(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금리 상승과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