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중국 루이싱 커피 투자사이자 운영사인 센추리엄 캐피털이 미국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의 전 세계 매장을 인수했다. 루이싱(Luckin) 커피는 2017년 설립, 100% 앱 주문과 픽업 중심 매장 등 효율적 운영으로 지난 2023년 중국 커피 전문점 시장 1위에 오른 업체다.
2002년 설립된 블루보틀은 높은 품질의 원두를 핸드드립 방식으로 제공하며, 지역색을 입힌 독특한 공간 전략으로 인지도를 구축해 온 프리미엄 커피 브랜드다.
이번 인수는 가성비와 효율을 추구하는 저가 플랫폼 커피가 느림의 미학을 내세우는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를 ‘접수’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매장 수는 물론 매출로도 스타벅스 등 글로벌 브랜드를 위협하고 있는 루이싱의 전략은 무엇일까. 앞으로 바뀔 글로벌 커피 전문점 시장의 지형에도 관심이 쏠린다.
파란 사슴, 루이싱은 어떤 브랜드?
2017년 10월 베이징에 첫 매장을 낸 루이싱 커피는 당시 중국에서 불었던 기술 투자 붐을 따라 탄생했다. 정보 기술(IT) 기반 렌터카 업체인 선저우쭈처 회장 류정야오와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지낸 첸츠야는 “우리는 기술을 활용하고 산업을 혁신하는 데 익숙하다”며 “중국 소비자들의 커피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겠다”면서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루이싱의 전략은 명확했다. ‘타도 스타벅스’.
창업자 첸츠야는 “사람들이 인어(스타벅스 로고 세이렌)보다 파란 사슴(루이싱의 로고)을 더 많이 들고 다니게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먼저 가격을 낮췄다.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473mL)를 스타벅스 25위안(5300원)보다 저렴한 20위안(4200원)으로 잡고, 할인 쿠폰을 수시로 뿌렸다. 각종 행사와 쿠폰을 반영하면 일반적으로 9~12위안(1900~2500원)에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핵심은 이 할인 쿠폰이 애플리케이션(앱)으로만 제공된다는 점이다. 루이싱은 처음부터 100% 앱 주문을 표방했다. 현금 없는 결제 방식과 위치 정보 등 회원 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광고, SNS 홍보 방식, 2+5·5+5 같은 파격적 쿠폰 정책은 당시 중국 커피 시장을 뒤흔들었다.
‘제3의 공간’으로 명명되곤 했던 스타벅스의 상징적 공간 전략도 비틀었다. 루이싱은 번화가를 제외한 거의 모든 매장을 픽업과 배달 위주의 작은 공간으로 만들었다. 오래 머물 수 있는 넓고 번듯한 매장 대신 사무실이 밀집한 건물의 한편에 의자도 몇 개 없는 매장을 내는 식이다. 이는 점포당 운영 비용을 줄이고 신규 점포를 늘리는 데 효과적이다.
결과는 대성공. 루이싱은 창업 1년 반 만에 중국 20개 도시의 매장 수를 3270개까지 늘리며 빠르게 몸집을 불렸다. 스타벅스가 1999년 중국에 진출해 2019년 기준 3700개 매장을 넘기기까지 20년이 걸린 것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였다.
‘상폐’ 지옥에서 살아 돌아오다
승승장구했던 루이싱의 행보에 제동이 걸린 것은 지난 2019년 5월 미 뉴욕 증시에 기업공개(IPO)를 하면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으로 불리며 한때 51.83달러까지 치솟았던 주가는, 상장 이듬해인 2020년 1월 공매도 전문 헤지펀드 머디워터스가 발표한 “루이싱 커피 매출은 조작됐다”는 보고서로 인해 곤두박질쳤다. 실제로 루이싱 커피 자체 조사 결과 2019년 2~4분기 조작된 매출은 최소 22억 위안(4692억원)으로 공시 매출의 절반에 가까웠다.
창업자 류정야오 회장 본인과 친척 소유 기업들이 거액의 커피 쿠폰을 구매한 것처럼 꾸며 거래액을 부풀렸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주가는 하루아침에 75.57% 급락했고, 시총 49억7000만 달러(7조3200억원)가 증발했다. 주가 폭락과 함께 상장 폐지가 결정됐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1억8000만 달러의 벌금도 부과받았다.
상장 폐지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지만 루이싱은 다시 돌아온다. 회장과 최고경영자를 이사회에서 축출한 뒤 창업 멤버 궈진이 제품 담당 부사장이 새로운 최고경영자에, 새 지배 주주가 된 중국계 사모펀드 센추리엄 캐피털의 리후이 회장이 루이싱 커피 회장 자리에 오르면서다.
새 경영진은 가장 먼저 제품 다각화에 돌입, 커피 시장이 성숙하지 않은 중국 시장에 맞춘 신선 음료를 내놓기 시작했다. 코코넛 라떼의 좋은 반응에 힘입어 마오타이주와 협업한 알코올 라떼, 오렌지 커피 등 트렌디한 메뉴를 개발했다. 2021년 한 해에만 총 113종의 신메뉴가 등장했고, 이후에도 한 해 100종 이상의 신제품이 꾸준히 출시됐다.
시기도 받쳐줬다. 중국 커피 시장의 가파른 상승세, 경기 침체로 인한 저가 브랜드 선호 등에 힘입어 2021년 빠르게 매출을 회복했고 분기 흑자를 달성했다. 2023년에는 매출 248억6000만 위안(5조3300억원)을 기록, 중국 내 스타벅스 매출 31억6000만 달러(4조6600억원)를 넘어서며 중국 커피 전문점 시장 1위에 올랐다.
뉴욕에 등장한 '00001'번 매장
현지 매체에 따르면 루이싱 커피는 지난해 매출 492억9000만 위안(10조5600억원)을 기록, 전년 대비 43% 성장세를 나타냈다. 총 매장 수는 3만1048개, 연간 음료 판매량은 41억 잔이다. 궈진이 최고경영자는 지난해 말 푸젠 성 샤먼에서 열린 기업가의 날 행사에서 “과거 문제를 해결하고 회사 경영 실적이 개선되면서 미국 본토 재상장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루이싱 커피는 글로벌 확장에 나서고 있다. 2023년 싱가포르 매장을 시작으로,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미국 뉴욕에서만 10여개 지점의 문을 열었다. 2025년 3분기 기준 루이싱의 해외 매장은 모두 118개다.
뉴욕 첫 매장 오픈과 함께 루이싱 커피의 인스타그램에는 “뉴욕, 우리가 왔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야심 찬 게시물이 올라왔다. 첫 매장 카운터 모서리에 적힌 매장 번호는 1이 아니라 00001. 1만 개 이상의 매장을 열겠다는 루이싱의 야망이 어린 숫자다.
한옥서 핸드드립, 블루보틀은 '변심'할까
루이싱 커피의 투자·운영사인 센추리엄 캐피탈은 이번 인수로 블루보틀 커피의 전 세계 매장 운영권을 쥐게 됐다. 인수 금액은 4억 달러(5900억원) 미만으로 전해졌다. 블루보틀은 202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제임스 프리먼이 창업한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다. 고품질 원두로 최상의 맛을 제공하는, 이른바 커피계 ‘제3의 물결’을 대표한다. 빠른 속도와 다양한 메뉴를 내세웠던 기존 커피 전문점과는 달리 바리스타가 손수 내리는 느린 커피로 소비자들의 감성을 파고들었다. 블루보틀은 지난 2017년 다국적 기업 네슬레에 인수된 바 있다. 이번 거래로 이제는 중국 자본의 영향권 아래 선 셈이다.
저가 대량 모델을 추구하는 루이싱은 이로서 장인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스페셜티 커피라는 완전히 반대 지점에 있는 브랜드를 확보하게 됐다. 업계에선 루이싱 투자사가 프리미엄 브랜드를 인수함으로써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증시 재상장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의견도 있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센추리엄은 블루보틀 뿐 아니라 코카콜라의 코스타 커피, 일본 ‘% 아라비카’ 등을 잠재적 인수 대상으로 검토해왔다. 압도적 공급망과 속도, 규모를 앞세운 루이싱의 전략이 앞으로 글로벌 커피 전문점 시장을 어떻게 뒤흔들지 지켜볼 일이다.
b.이슈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이슈를 건져 올립니다.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매력적인 공간을 탐색하고, 시대와 호흡해 성장하는 브랜드와 기업을 조명합니다. 비즈니스적 관점은 물론, 나아가 삶의 운용에 있어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