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하카란다꽃 흩날리는 봄날의 멕시코…커지는 빈부 격차
상위 1%가 전체 부의 40% 차지…극심해지는 부의 편중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부임한 지 열흘 남짓밖에 되지 않았지만, 멕시코는 아름다운 나라인 듯하다. 특히 수도 멕시코시티는 오랜 스페인 식민지였던 까닭에 바로크나 로코코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화려한 색채의 유럽풍 건물들과 마천루처럼 치솟은 현대식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이맘때에는 '하카란다'라 불리는 멕시코풍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데, 일순 보랏빛으로 물든 도시는 장관을 이룬다.
낮에만 아름다운 건 아니다. 밤이 되면 보석처럼 반짝이는 불빛이, 별빛을 조롱하듯 진풍경을 연출한다. 그 불빛에는 2천만 멕시코시티 시민의 잠 못 이루는 걱정과, 퇴근 후 찾아온 편안함과, 그리고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의 꿈이 담겨 있다.
하지만, 아름다움만으로 멕시코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치안 문제도 함께 언급해야 '공정'하다. 밤은 물론, 낮에 걸어 다닐 때 좌우를 살펴야 할 정도로 치안 문제는 시의 고질적인 병폐다. 치안이 안전하기로 정평이 난 부촌 '로마스 데 차풀테펙'의 한 유명 식당에서 총을 든 괴한에 의해 손님들이 강도를 당한 사건이 며칠 전 현지 신문에서 보도됐다. 손님들은 30초도 안 되는 시간에 현금과 시계를 비롯해 귀중품을 싹 털렸다고 한다.
멕시코의 거장 미셸 프랑코 감독에게 베네치아영화제 은사자상(심사위원 대상)을 안긴 '뉴 오더'(2020)를 보면 그런 시티의 치안 불안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극심한 부의 불평등 속에 부자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공격당한다. 시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도 약탈에 동참한다. 일부 군인은 부자들을 구해주는 척하면서 납치해 몸값을 요구하기까지 한다. 그 과정에서 인면수심의 짓도 서슴지 않는다. 프랑코 감독은 건조하면서도 차가운 시선을 유지한 채 각 계급의 '저열한 행동'을 샅샅이 보여준다.
실제 멕시코의 빈부격차는 극심하고, 이는 치안 불안의 주요 요인 중 하나다. 최근 영국 일간 가디언과 현지 일간지들에 따르면 멕시코 인구의 상위 1%가 국가 부의 40%를 소유하고 있으며 재산 상위 10%는 국가 부의 71%를 보유하고 있다. 멕시코 상위 22위 안에 든 억만장자의 재산은 지난 5년간 두 배로 불어났다. 특히 최대 부호 카를로스 슬림의 자산은 30년전인 1996년에 견줘 8배 이상 급증했다.
부는 직접적인 재산 상속뿐 아니라 교육 등을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세습'된다. 멕시코 부자들의 자녀들은 '콜레히오'라 불리는 사립학교나 미국과 유럽인이 운영하는 국제학교를 다니는 반면, 빈민가 아이들은 국가 지원이 미미한 공립학교를 다닌다. '신분의 갭'이 어린 시절 교복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셈이다. (프랑코 감독의 또 다른 걸작 '애프터 루시아'는 공립학교에서 콜레히오로 간 여자아이가 집단 괴롭힘을 당하자, 그녀의 아버지가 가해자들을 찾아 나서 복수한다는 내용을 담기도 했다.)
며칠 전 부촌에 위치한 소리아나 마트 안에서 말끔하게 차려입은 어느 중년 남성이 경비원에게 붙잡히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의 세련된 복장에서 멕시코의 안락함과 아름다움이, 그리고 경비원에게서 도망치려는 그의 발버둥 속에서 멕시코의 치안 부재와 가난이, 순간적으로 동시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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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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