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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와칭] 당신의 남친은 AI보다 훌륭한가요? '월간남친' 리뷰

중앙일보

2026.03.14 16:00 2026.03.14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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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월간남친'. 사진 넷플릭스
‘월간남친’(극본 남궁도영, 연출 김정식)이란 드라마가 있습니다. 제목만 봐선 무슨 말일까 싶지만, 내용을 알고 나면, 그 제목 안에 핵심 내용은 다 들어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극중 ‘월간남친’이란, 월 단위로 가입하면 AI가 만들어 낸 900명의 이상적인 남자친구들과 데이트를 할 수 있는 가상현실(VR) 서비스의 이름입니다. 아직은 존재하지 않지만, 머잖아 시장에 등장할 수도 있는 그런 서비스라고나 할까요.

주인공 미래(블랙핑크 지수)는 현실에서 웹툰 서비스 회사의 PD입니다. 유명 인기 웹툰 작가를 관리하고, 작가와 아이디어 회의를 함께 하기도 하고, 상담역이 되어 주기도 하고, 작가가 마감에 맞춰 제출하는 작품을 최종적으로 송출하는 일을 하죠. 동료 PD들 중에는 경남(서인국)이 있습니다. 유능하다고 인정받고, 잘생긴 인기남이지만 회식 자리엔 거의 가지 않고, 말수도 적은 개인주의자입니다. 미래와는 업무상 라이벌 관계죠.

오래 사귄 남자친구의 변심으로 솔로가 된 미래는 우연히 ‘월간남친’을 무료로 플레이해보라는 제안을 받습니다. 그렇게 들어간 ‘월간남친’ 은 정말 놀라운 별세계죠. 그 안에서 미래는 도심의 스카이라인이 내려다 보이는 200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거의 무한히 제공되는 신상 명품 의류며 액세서리로 치장하고, 900명의 멋진 남자들을 만나 꿈같은 데이트를 나눌 수 있습니다. 드라마에 900명이 모두 나오지는 않지만 서강준, 옹성우, 최시원, 이수혁, 그리고 박재범이 ‘그 남자들’로 등장합니다. 보는 눈이 심심하지 않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월간남친'. 사진 넷플릭스
드라마 설정상, 사이버 남친들과 주변 환경은 현실과 구별할 수 없는 정교한 그래픽으로 구현됩니다. 심지어 데이트 중에 먹는 음식의 기막힌 맛도, 볼을 쓰다듬는 남자친구의 손길, 한밤의 눈 쌓인 오두막에서 느끼는 벽난로의 온기도, 석양 무렵 요트 위의 파티장에서 느끼는 바닷바람도 모두 실제처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미래는 결국 만만찮은 돈을 내고 정식 유료회원이 되고, 이 서비스의 매력에 한 순간 푹 빠집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미래는 이 완벽에 가까운 ‘남친’들이 자신 외에도 수천 수만명의 다른 ‘여친’들에게 똑같이 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환멸을 느끼는데(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2014년 영화 ‘그녀’의 결론과 같습니다), 그런 미래를 붙잡기 위해 ‘월간남친’ 측은 마지막으로 제안합니다. 그것은 ‘오직 너 한 사람만을 위한’, 철저하게 ‘너에게 최적화된’ 남자를 설계해 주겠다는 것이었죠. (이 부분에서 ‘월간남친’은 초대형 호스트바와도, 혹은 날마다 새로운 아이돌들이 여심을 사로잡기 위해 등장하는 아이돌 덕질 세계와도 선을 긋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 901번째 남자를 만나게 된 미래. 여기서 드라마 ‘월간남친’은 시청자에게도 마지막 질문을 던집니다. 왜 인간은 그렇게 연애에 매달리는가. 과연 연애라는 것은 얼마나 가성비 높은 활동인가. 만약 실제 연애의 이점을 모두 누리면서 리스크는 하나도 없는 가상현실 서비스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연애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공상과학(SF)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 [사진 워너브라더스픽처스]
2026년의 세계는 저 질문에 대한 답을 쉽게 내릴 수 없게 합니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연애 감정을 그려 화제가 되었던 영화 ‘그녀’는 벌써 12년 전, 가상세계 속 인간의 정체성을 다뤘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도 벌써 8년 전 영화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레디 플레이어 원’의 결론은 영화 속의 가상세계 서비스인 오아시스(Oasis)를 일주일에 이틀씩은 문을 닫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가상세계가 좋아도 역시 더 중요한 것은 현실의 삶’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죠.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는 “왜냐하면 현실만이 진짜 삶이니까(Because reality is real)”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술과 함께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하고 있고, 이제는 우리가 가상현실이라고 부르는 세계가 현실을 대체하는 진짜 삶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이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호주 출신 철학자 데이비드 찰머스는 저서 ‘리얼리티 플러스(2022)’에서 “이제 가상세계를 ‘비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가상세계를 표현하는 시각 효과가 매우 리얼해지고 있기 때문은 아닙니다. 현실과 구분할 수 있든 없든, 그 가상세계에서의 경험도 우리를 변화시키는 진짜 경험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찰머스의 '리얼리티 플러스'. 사진 yes24 캡처
놀랍게도, ‘월간남친’은 그 주장을 제대로 관통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처음 ‘월간남친’의 가입비를 본 미래는 깜짝 놀라지만, 잠시 생각해 본 뒤, 그 가격은 ‘실제 연애’에 비하면 전혀 비싼 가격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연애’라는 행위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현실의 남녀는 모두 자신을 꾸며야 합니다.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더 많이 부담한다 해도, 여자는 여자대로 꽤 큰 규모로 돈과 시간을 투입해야 합니다. 헤어, 메이컵, 다이어트는 모두 공짜가 아니죠. 여기에 연애를 하지 않는다면 필요 없을 옷과 신발도 사야 합니다. 그밖에도 크고 작은 선물 같은 자질구레한 비용이 제법 많이 들어갑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월간남친'. 사진 넷플릭스

게다가 현실에서는 이런 노력도 무심하게 데이트가 ‘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반면 ‘월간남친’ 속 데이트에는 실패란 없죠. 이런 계산을 마친 미래는 꽤 큰 금액을 내고 구독을 결심합니다. 경제적인 면은 물론, 불필요한 감정적 소모도 피할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사이버 남친’의 무한한 포용력을 따라갈 수 있는 ‘인간 남친’이 있을까요. “난 네 단점이 만개라도 네가 좋은데, 너는 내 단점이 하나라도 싫어?”라고 웃으며 말해주는 인간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미래가 ‘영원히 나를 배신하지 않을’ 가상공간의 남자친구와 만나고 얼마 되지 않아 현실에서도 오랫동안 자신을 지켜봐 온 남자와 사랑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찾아옵니다. 정말로 완벽한 가상 남친과 정말 좋지만 그래도 완벽까지는 아닌 실제 남친. 과연 후자는 전자보다 나은 선택일까요. 대체 인간은 이런 불확실성과 실패를 가진 연애라는 것에 왜 그렇게 매달려 온 것일까요.
넷플릭스 드라마 '월간남친'. 사진 넷플릭스.
리처드 도킨스 식으로 설명하자면 연애나 사랑이란 우리의 유전자가 증식을 위해 우리 몸에 내리는 명령인 것이고, 유전자는 그 목적을 감추기 위해 살짝 위장된 이익도 만들어줍니다. 그건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이죠. 몸짓 하나, 표정 하나는 다른 어떤 행동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만족을 줍니다.

그런데 ‘월간남친’은 거기에 도전합니다. 만약 네가, 실제 인간과 연애를 하지 않고도 그것을 얻을 수 있다면, 즉 고도로 정교하고 잘 설계된 서비스를 통해, 돈이나 시간이나 고민을 들이지 않고도 성공적인 연애가 주는 정서적인 안정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면, 진짜 연애 대신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10부작 드라마는 ‘그걸로는 안 된다’는 답을 마련해두고 있습니다. 연애감정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순간의 짜릿한 만족이 아니라, 공기처럼 항상 곁에서 빈 자리를 메워주는 것이라는 설명이죠. 예를 들면 딱히 남아서 할 일은 없지만 ‘그 사람’이 썰렁한 사무실에 혼자 남아 있는 것이 싫어서 야근을 자청하는 일, 특히 크리스마스 이브를 혼자 보내지 않도록 배려하는 일, 조용히 손으로 쓴 카드를 전해주는 일 같은 것 말입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월간남친'. 사진 넷플릭스
다시 말해 가상현실 속에서 보내는 몇 시간의 환상적인 체험은 힘든 일상을 버텨 나갈 수 있는 도파민을 공급해 줄 수 있지만, 누군가 내 옆자리를 지켜주고 있다는, 빈 자리를 메워주고 있다는 느낌까지 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 답을 던집니다. 즉 이쪽은 ‘진짜’고 저쪽은 ‘가짜’라가 아니라, 생활 전반을 놓고 볼 때 이쪽이 더 큰 충족감을 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미래를 알 수 없다는 불안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연인을 선택하게 된다는 설명이죠.

물론 ‘지금 현재까지’ 이쪽이 더 유력한 답이라고 해서, 앞으로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같은 드라마 안에서도 다른 출연자는 결국 현실의 복잡한 인간관계 대신 가상세계의 남자친구가 주는 푸근한 위안을 선택하기도 하죠. IT업계가 지금처럼 치열하게 노력한다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더 많은 사람들은 ‘가상’에서 그 해결책을 찾을지도 모릅니다. 나이 먹은 사람으로서 아무쪼록 그런 날이 조금이라도 늦게 오도록, 사랑할 상대를 찾는 사람들이 좀 더 타인을 이해하고, 그들과 공감하도록 노력하기를 바라게 됩니다. 이런 것들까지도 인공지능이 더 잘 하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인류 문명의 마지막 순간이 되지 않을까요. 아무튼 '월간남친' 같은 드라마가 있어서, 한국 드라마는 아직 중국이나 기타 아시아 지역 콘텐트들을 추격에서 한발 이상 앞서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송원섭([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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