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조형래 기자] 우물 밖 세상에서는 돌을 던지고 있을 때, 한국만 솜을 던지고 있었다. 기적의 8강에서 그치지 않고 세계 야구에 편승하기 위해서 더 노력해야 하고 분발해야 할 때다.
한국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은 14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디포 파크에서 열린 WBC 8강전 도미니카공화국과의 경기에서 0-10, 7회 콜드게임 패배를 당했다. 한국은 2009년 이후 17년 만에 WBC 1라운드를 통과했지만 단 한 경기만에 세계 최강의 대표팀과 격차를 확인했다.
한국은 빅리그 78승 경력을 갖춘 베테랑 류현진을 내세워 1라운드에서 13개의 홈런을 뽑아낸 도미니카공화국 타선을 묶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도미니카공화국의 핵타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류현진 이후 노경은, 곽빈, 데인 더닝, 고영표, 조병현, 고우석, 소형준을 내세워 도미키나공화국 타선을 억제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7회 오스틴 웰스에게 콜드게임을 만드는 끝내기 스리런 홈런을 얻어 맞았다. 타선도 도미니카공화국 선발 좌완 크리스토퍼 산체스와 불펜 앨버트 아브레유의 강속구에 단 2안타로 묶였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첫 경기 체코전 11-4로 승리하며 2009년 이후 17년 만에 1차전 패배 징크스를 깼다. 이후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중반까지 5-5로 대등하게 맞서다 막판 뒷심 저하로 6-8로 패했다. 한일전 11연패를 극복하지 못했지만 모처럼 일본 최정예 대표팀과 대등한 승부를 펼쳤다는 것에 의의를 뒀다. 그런데 이튿날 열린 대만전을 상대로 고전하면서 연장 승부치기 끝에 4-5로 패했다. 1승2패로 다시 한 번 1라운드 탈락 위기에 몰렸다. 한국은 1라운드 최종전 호주전에서 5점 차 이상, 2실점 이하라는 경우의 수를 뚫어야 8강에 오를 수 있었다. 한국은 이 어려운 경우의 수를 7-2로 성립시키면서 기적적으로 8강에 올랐다.
8강의 기적은 단 한 경기 만에 높디 높은 세계의 벽 앞에서 무너졌다. 도미니카공화국 투수들의 어떤 공을 던져도 치기 힘들었고, 타자들에게는 어떤 공을 던져도 손쉽게 받아쳤다.
대회 준비 기간부터 투수진에 대한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8강이라는 1차 목표는 달성했지만, 투수진의 구위와 자질이 세계 수준과는 차이가 크다는 현실을 절감했다. 막연하게 넘어갈 문제가 아닌,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다.
기본적인 패스트볼 구속부터 세계 수준과 동 떨어져 있다. 메이저리그부터 시작된 야구계의 구속 혁명은 한국과는 다른 세상의 얘기다. 포심 패스트볼 기준(커터, 투심 등 변형 패스트볼 제외) 평균 구속 순위에서 한국은 20개 국가 중 18위다. 91마일(146.5km)에 그쳤다. 한국보다 아래에 있는 국가는 호주(89.9마일, 144.7km), 체코(86.4마일, 139km) 뿐이었다. 체코는 ‘투잡러’도 있는 사실상의 세미 프로 수준의 선수들이다. 도미니카공화국이 96.2마일(154.8km)로 가장 강하고 빠른 공을 던졌고, 그 다음 베네수엘라 95.8마일(154.2km), 미국 95.4마일(153.5km), 멕시코가 95.1마일(153km)로 뒤를 이었다. 인종의 차이, 체형의 차이를 이유로 들기에는 같은 아시아 국가인 일본, 대만과도 많은 격차가 있다. 일본은 94.5마일(152.1km)을 기록하면서 중남미 국가들의 뒤를 이어 5번째로 빠른 공을 던졌다. 무엇보다 대만과의 격차는 꽤나 충격적이다. 1라운드에서 탈락했지만 대만도 평균 93.5마일(150.5km)의 빠른 공을 구사했다. 한국과도 4km 가량 차이가 있었다.
강한 공으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구속 혁명의 시대에 한국은 뒤쳐진 게 맞다. 2023년 대회와 비교해보면 한국은 명백하게 퇴보했다. 2023년 대회에서 한국은 91.1마일(146.6km)의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을 기록했다. 한국은 대동소이했다.
반면, 2023년 대회 대만은 89.8마일(144.5km)의 포심 평균 구속을 기록했다. 그런데 이번 대회에서 비약적으로 공이 빨라진 투수진을 데리고 대회에 참가했다. 3년 만에 무려 6km가 상승했다. 1라운드 한국전에 등판한 대만의 구린루이양, 린웨이언, 린카이웨이, 쑨이레이, 장이, 쩡쥔웨 등 6명의 vHTLA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93.9마일, 151.2km에 달했다. 문동주(한화), 원태인(삼성), 라일리 오브라이언(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한 선수들의 영향이 있겠지만, 한두 명의 힘으로 세계와의 격차가 좁혀질 리는 없다. 그나마 이번 대회 곽빈이 평균 96.5마일(155.3km), 고우석이 94.1마일(151.4km)의 포심을 뿌린 게 위안이었다. 포심, 직구는 투수들에게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공이다. 기본이 얼마나 탄탄하냐에 따라서 투수의 기량이 달라질 수 있다. 모두가 기본을 단단하고 더 강화할 때 한국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한국 야구계는 1200만 관중에 자화자찬했고, 선수들은 팬들의 과분한 사랑에 취했다. 우물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만족하는 사이에 우물 밖의 세계 야구는 꾸준히 발전했고 또 빨라지고 있었다. 2023년 대회에서 한국은 김광현(SSG) 양현종(KIA)이 여전히 대표팀 투수진의 중심이었고, 이번 대회에서는 류현진(한화), 노경은(SSG) 등 불혹 안팎의 투수들에게 중요한 상황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150km가 넘는 강한 공을 뿌리는 투수들은 곽빈, 고우석이 유이했다.류지현 대표팀 감독도 “KBO리그에서 선발투수들이 각 팀에 보통 3~4명이 활동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국제대회 경쟁력을 높이려면 수적으로 많은 선수들이 기회나 역할을 해야 한다”라며 “그리고 확실히 국제대회 나왔을 때 대한민국 투수들이 구속이 다른 나라에 비해 떨어지는 게 사실인데 이런 부분이 조금 더 학생야구부터 잘 차근차근 만들어져서 조금 더 경쟁력 있는 대표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며 한국 투수들의 구속 향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BO리그 구단들이 노력을 안한 것은 아니다. 투수 유망주들을 선별해 미국 드라이브라인, 트레드 애슬레틱, 일본 넥스트 베이스 등 바이오메카닉을 바탕으로 구속 향상을 꾀하는 트레이닝 센터로 단기 연수를 보냈다. 하지만 아직 가시적인 수확이 보이지는 않는다.
패스트볼 구속만으로 세계 야구와의 격차가 단숨에 좁혀질 리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세계 야구의 흐름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은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이번 대회를 통해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