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최근 잇따라 승소하면서 수천억원대 배상 부담을 피했다. 론스타·엘리엇·쉰들러 등 대형 사건에서 연속으로 성과를 내면서 정부의 국제분쟁 대응 역량이 한 단계 올라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15일 법무부에 따르면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판정부는 스위스 승강기 업체 쉰들러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약 3200억원 규모의 ISDS에서 쉰들러의 청구를 전날 전부 기각했다.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가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국 금융당국이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않아 손해를 입었다며 약 5000억원 규모의 배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중재 과정에서 청구액은 3200억원으로 줄었고, 중재판정부는 이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는 앞서 론스타 사건에서도 약 4000억원의 배상 의무를 없애는 성과를 거뒀다.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는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한국 금융당국이 가격 인하 압력을 가했다며 2012년 약 6조9000억원 규모의 ISDS를 제기했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중재판정부는 2022년 우리 정부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며 약 4000억원 배상을 명령했다. 하지만 이후 론스타와 정부가 각각 제기한 취소 절차에서 판정이 뒤집혔다. 취소위원회는 론스타의 취소 신청을 전부 기각하고 정부의 취소 신청을 받아들여 약 4000억원 규모의 배상 책임을 소급해 없앴다.
엘리엇 사건에서도 상황은 달라졌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공단이 정부 압박에 따라 찬성표를 던졌다고 주장하며 약 1조원 규모의 ISDS를 제기했다. PCA는 2023년 일부 배상 책임(약 1600억원)을 인정했지만, 정부가 영국 법원에 제기한 취소 소송에서 항소 끝에 승소하면서 해당 판정은 유지될 수 없게 됐다. 사건은 다시 중재 절차로 돌아갔다.
법무부에 따르면 그간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ISDS는 약 10건 안팎으로 파악된다. 과거 이란의 다야니 일가와 미국 사모펀드 메이슨 사건에서는 각각 약 730억원과 약 860억원의 배상을 명령받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1년 사이 주요 ISDS 사건에서 잇따라 승소하면서 정부가 면한 배상 규모만 약 8800억원에 달한다. 특히 론스타 사건은 국제투자중재에서 판정 취소가 전부 인용되는 사례가 약 1.6%에 불과한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배경에는 정부의 ISDS 대응 체계 정비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8년 무렵 엘리엇·메이슨·쉰들러 등 주요 사건이 동시에 제기되면서 투자분쟁을 전담할 조직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커졌고, 법무부는 2020년 국제투자분쟁과를 신설했다.
이후 2023년 8월 국제법무국으로 조직을 확대하고 국제중재 경험이 있는 정홍식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초대 국장으로 임명하는 등 대응 역량을 강화했다.
정 전 국제법무국장은 “법무부 국제법무국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 관계 부처와 정부 대리 로펌을 조율하고 대응 전략을 총괄한 점이 최근 성과로 이어졌다”며 “중재인의 판단 기준을 고려해 사건을 분석한 것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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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분쟁은... 쿠팡 ISDS 가능성도
최근 대형 분쟁에서 승소 사례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를 상대로 한 국제투자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다야니 가문이 정부가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배상금 약 730억원과 관련해 2차 ISDS를 제기했고, 결과는 이르면 올 상반기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정부가 승소한 엘리엇 사건도 재중재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며, 쉰들러 역시 중재지인 홍콩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에는 쿠팡의 미국 투자자들이 개인 정보 유출 문제와 관련해 우리 정부를 대상으로 국제중재 의향서를 제출하면서 새로운 ISDS가 제기될 가능성도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