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 의사를 밝히고 잠적했던 이정현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15일 이틀 만에 업무에 복귀했다. 이 위원장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의사가 심장이 멈춘 환자를 살리기 위해 전기충격을 가하듯 우리 당에도 결단과 충격이 필요하다”며 “기득권이든 관행이든 과감히 바꾸겠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을 돌려 세운 건 장동혁 대표였다. 이 위원장은 지난 13일 “공천 과정에서 변화와 혁신을 더 이상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사퇴한 뒤 칩거했다. 그러나 장 대표가 지난 14일 경기도 모처에 있던 이 위원장을 찾아가 “공천혁신을 완수해 달라. 공천과 관련된 전권을 맡기겠다”는 취지로 설득했다고 한다.
이 위원장이 15일 ‘공천 전권’을 쥐고 복귀하자 당 내에선 “대구시장 공천에서 피바람이 불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이 위원장은 “선거의 새 바람이 불기 위해선 대구 중진에 대한 페널티가 불가피하다”며 대구를 정조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호영(6선)·윤재옥(4선)·추경호(3선)·유영하(초선)·최은석(초선) 의원 등 현역 의원 5명과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 총 9명이 대구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이 위원장이 사퇴했던 것도 대구 중진 의원들의 컷오프(공천 배제)를 둘러싼 이견이 결정적이었다. 지난 12일 공관위 회의에서 이 위원장이 “대구에 출마한 중진들이 너무 많다” “큰 폭의 감점이나 컷오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일부 공관위원들은 “기준 없이 감점하면 반발이 커진다” “특정 후보만 유리할 수 있다”며 맞섰다고 한다. 그러자 이 위원장은 “이래서 혁신이 되겠느냐”고 받아친 뒤 다음날 직을 던졌다.
이 위원장은 15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애초부터 물러설 것이었으면 돌아오지도 않았다”며 “털 끝 만큼도 후퇴는 없다”고 공언했다. 대구가 ‘이정현표’ 혁신 공천의 첫 타깃이 될 가능성이 커지자 내부 반발이 이미 심상치 않다. 주호영 의원은 “제대로 된 기준과 절차가 없다면 당이 더 혼란으로 빠져들 수 있다”고 말했다. 추경호 의원은 이날 대구에서 여의도 국회 사무실로 복귀해 대책 회의를 가졌다고 한다. 한 영남권 의원은 “혁신 자체는 바람직 하지만, 중진들만 무자비하게 내친다면 오히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부겸 전 총리의 출마를 도와주는 꼴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 이날 직무에 복귀하자마자 서울시장 후보 추가 공천 접수 공고를 내놓으며 오세훈 서울시장과도 대립각을 세웠다. 공관위는 이날 보도자료에서 “오는 월요일(3월 16일) 서울시장 후보 추가 공천 접수를 공고할 예정”이라고 했다. 16일 공고, 17일 접수, 18일 면접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론 오 시장에게 추가 접수를 기회를 준 것이지만 당 내에선 “최후통첩”이란 반응이다. 오 시장은 사실상 장 대표의 2선 후퇴를 요구하며 지난 8일 마감한 서울시장 후보 신청에 이어 지난 12일 추가 공천 신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이 위원장은 추가 후보 신청 일정을 새로 정하면서 오 시장과 별도 조율을 하지 않았다. 한 공관위원은 “공정성을 깨고 오 시장에게 두 번이나 추가 접수 기회를 준 것인 만큼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오 시장은 여전히 혁신 선거대책위원회 구성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오 시장 측 관계자는 “유승민 전 의원이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등 중도적 성향의 인물이 중심이 된 선대위를 꾸려야 후보 접수가 가능하단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했다. 오 시장은 16일 예정된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서 선대위 구성 가능성을 지켜본 뒤 추가 접수 관련한 자신의 입장을 정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한 지도부 인사는 “장 대표의 2선 후퇴를 앞세운 선대위 구성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또 특정 인물을 선대위원장으로 계속 요구하는 것도 무리한 주장”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장 대표도 최근 유승민 전 의원과 접촉했으나, 선대위 합류 관련한 답변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김종인 전 위원장도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국민의힘의 선대위원장을 맡을 생각이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편, 공관위는 이날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를 각각 대전시장·충남지사 후보로 단수 공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