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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 직전 드론 공격"…한국인 204명 구출작전 '사막의 빛' 성공

중앙일보

2026.03.15 05:19 2026.03.15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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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 (저기)있다!” “엄마는 어디 있어?”

할아버지는 포화를 뚫고 귀국한 손녀부터 부둥켜 안았고, 타국에서 돌아온 딸은 친정 엄마를 찾아 고개를 연신 두리번거렸다. 고국 땅에서 재회한 가족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손을 맞잡았다.

미국의 대이란 공습 작전 ‘장대한 분노’로 중동 지역에 발이 묶였던 우리 국민 등 211명이 15일 정부가 마련한 군 수송기 편으로 귀국했다. 국내로 대피한 인원은 사우디아라비아·바레인·쿠웨이트·레바논 등 중동 4개 지역의 교민 204명과 외국 국적 가족 5명, 일본 국민 2명 등이다. 정부는 이번 작전을 ‘사막의 빛(Desert Shine)’이라 명명했다.
 14일 중동 재외국민 귀국 지원 작전 '사막의 빛(Desert Shine)' 임무를 위해 공군 KC-330 시그너스 수송기가 김해기지에서 이륙하고 있다. 사진 국방부
이날 오후 17시 59분, 성남 서울공항 활주로에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 KC-330 '시그너스'가 착륙했다. 기체가 활주로를 이동하는 동안 비행기 안의 교민들은 들 뜬 표정으로 창문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마중 나온 가족들을 찾았다.

비행기 게이트가 열리자 4인 가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엄마는 첫째 딸의 손을 잡고, 아빠는 둘째 딸의 손을 잡고 나란히 계단을 내려왔다. 작은 딸의 손에는 태극기가 들려 있었다. 군 관계자들이 ‘우리 국민들의 안전 귀국을 환영합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을 펼쳐 들고 있었다.

뒤이어 작은 여행용 캐리어를 손에 든 교민들이 하나둘 계단을 내려왔다. 주로 가족 단위였다. 피곤한 표정이 역력한 아이들은 “너무 춥다” “패딩을 못 챙겼다”고 말하기도 했다. 급하게 철수하며 옷가지를 제대로 챙기지 못 한 탓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교민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악수를 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는 말이 오갔다.
이날 대피 작전은 이륙 직전까지 급박하게 돌아갔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작전의 신속대응팀장을 맡은 이재웅 전 외교부 대변인은 “공항에서 탑승 시작 직전에 사우디 당국에서 영공 통제 조치를 취하는 바람에 제 시간에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할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40분 만에 영공 통과 조치가 풀려 모든 분들이 탑승해서 돌아오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방부 관계자는 “이륙 직전 주변에 (이란의)드론들이 떠서 리야드 공항 인근 미군기지를 폭격하는 것이 들렸다”면서 “이로 인해 이륙이 홀드(중단)됐다가 출발한 것”이라고 밝혔다.
 중동 재외국민 귀국 지원 작전 '사막의 빛(Desert Shine)' 작전을 통해 공군 KC-330 시그너스 수송기로 귀국한 교민들. 사진 국방부
바레인에서 사우디를 거쳐 귀국한 정서은(10)양은 “집에서 미사일이 날아가는 모습이 보여서 너무 무서웠어요. 공항에서 우리(나라) 비행기를 보니까 신기했어요”라고 말했다.

자녀 두 명과 바레인에서 귀국한 교민 박모(43)씨는 “미사일 공격을 워낙 많이 봐서 비행 중에도 혹시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에 와서 드디어 안심했다”고 말했다.

사우디 교민 이선아(41)씨는 “지금 거의 2주 차 정도 됐는데 현지 상황이 처음에는 그렇게 위력적이지 않았다”면서 “최근 하루 이틀 사이에 굉장히 큰 소리가 많이 나고 드론도 많이 오고 요격하는 소리들이 너무 잦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무래도 직업 때문에 남편들은 다 못 나오고, 아기들이나 엄마들만 나오게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국인 엄마와 아일랜드 국적의 아빠를 둔 데일리 코엔허(17)군은 “쿠웨이트에 있었을 때는 밤마다 계속 폭격 소리도 들리고 저희 근처에 있던 미국 대사관에 대한 공격도 직접 보게돼서 아주 무서운 상황이었다”면서 “한국 대사관에서 감사하게도 먼저 연락을 주셔서 무사히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그너스는 전날 오후(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 도착했으며, 저녁에 탑승객들을 태우고 한국을 향해 출발했다.

안전한 작전 수행을 위해 수송 경로상의 10여 개 국가에 영공 통과 협조를 구하는 한편 외교부 고위 당국자를 단장으로 한 신속대응팀을 현지에 파견했다. 또 공군 조종사와 함께 안전을 책임질 최정예 특수부대 공군 공정통제사(CCT)와 정비·의료 등 병력 30여 명이 시그너스에 동승했다.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 임무요원들이 13일 '사막의 빛' 작전에 앞서 항공기 부품 및 정비도구와 편의용품 등 임무에 필요한 물자들을 시그너스에 싣고 있다.사진 국방부
사우디아를 비롯한 중동 각지에 체류하던 한국인들은 수송기 탑승을 위해 리야드로 집결했다. 쿠웨이트에 머무르던 한국인들은 현지 대사관 인솔 하에 버스로 리야드까지 이동했고, 레바논의 경우에는 항공편을 이용해 리야드에 도착했다.

정부는 당초 민항기나 전세기를 투입하는 방안도 고려했으나, 안전상의 문제를 고려해 군 수송기를 투입하기로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쿠웨이트, 바레인, 이라크 등에서 우리 단기 체류자들이 사우디로 오더라도 귀국 항공편이 여의찮았다”라면서 “최근 레바논 지역에서도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 분쟁이 격화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 국민의 안전 확보를 위한 (군 수송기를 투입할) 가장 적합한 지역으로 리야드로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공군은 총 4대의 시그너스 다목적 공중 급유 수송기를 운용하고 있다. 항속 거리가 최대 7400㎞인 KC-330 시그너스는 한 번에 인원 300여 명과 화물 45t을 수송할 수 있다.

시그너스가 해외 우리 국민 이송을 위해 투입된 건 이번이 일곱 번째다. 앞서 2021년 아프가니스탄 ‘미라클 작전’과 2023년 수단 ‘프라미스 작전’을 비롯해, 2023년 이스라엘과 2024년 레바논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의 대피 임무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날 서울공항에서 교민들과 군·정부 관계자들을 맞이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사막의 빛’ 작전은 약 33시간 하늘에서 지상에서 해상에서 입체적 작전을 통해 우리 교민들을 안전하게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 가장 큰 임무였다”며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완벽하게 임무를 해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유정.정영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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