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가 흥행하며 연인·가족·친구 단위의 관객들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작품 배경이 된 사적지와 박물관을 방문하는 관광객도 폭증하며 세대와 성별을 넘은 ‘단종 앓이’가 유행하고 있다.
15일 서울 마포구 한 영화관에 아내, 두 자녀와 함께 왕사남을 보러온 박수범(51)씨는 “요즘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가 많아졌지만 모처럼 가족들과 영화관에 올 수 있어 좋았다”며 “이 작품은 자녀들과 공감대를 만들 수 있고 교육적인 도움도 될 것 같아서 내가 먼저 제안했다”고 말했다. 중학교 1·2학년 자녀를 둔 신서이(46)씨는 “큰아들이 한국사와 세계사를 배우면서 역사에 흥미가 생겼다면서 제안했다”며 “올해 영화관을 찾은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왕사남 열풍은 극장을 넘어 사적지와 박물관까지 향했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 위에 놓인 30m짜리 영도교 주변에는 평일 낮 시간대에 수십명이 있었다. 안내판에는 ‘단종이 유배가기 전 왕비 정순왕후가 마지막 배웅을 한 곳’이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이를 유심히 보던 배모(70)씨는 “영화를 보고나서 역사적 사실을 더 공부하기 위해 직접 왔다”고 했다. 인근의 사적지 동망봉에서 만난 50대 고모씨는 “자주 산책하는 곳인데 왕사남으로 유명해져서 방문객이 2배 가까이 많아졌다”고 했다. 이곳에는 ‘왕비(정순왕후)가 단종의 유배지 방면인 동쪽을 향해 바라본 곳’이라고 적혀있었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20분가량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 하지만 70대 손모씨는 “일부러 시간 내서 지하철만 40분을 타고 왔다”고 말했다.
경복궁 서쪽 편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도 방문객으로 붐볐다. 혼자 전시를 보러 온 송모(27)씨는 “어린 나이에 비극적인 삶을 산 단종이 떠올라 눈물이 고인다”고 했다. 특히 곤룡포를 가리키며 “옷을 보니 왕의 삶이 현실적으로 느껴져 단종을 체험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관람을 마치고 나온 김모(54)씨는 “전시를 보기 위해 딸·남편과 함께 인천에서 1시간 차를 타고 왔다”고 말했다.
15일 영월군에 따르면 단종 유배지인 청령포와 묘역인 장릉을 찾은 방문객은 이달 초 11만명을 넘어섰다. 이는 지난해 연간 총관람객 수 26만3327명의 41%에 해당한다. 단종 인기에 지역 상권 역시 단종이 즐겨 먹었다는 어수리 나물 정식과 메밀전병, 올챙이국수 등 향토 음식을 즐기려는 여행객으로 붐비고 있다. 영월군은 다음 달 24~26일 개최하는 단종문화제에 단종과 정순왕후 송씨의 못다 한 인연을 기리는 국혼(國婚)과 단종이 유배지인 청령포로 들어가는 모습을 재현하는 행사를 신설했다. 이어 개막 첫날인 24일 왕사남을 연출한 장항준 감독을 초청해 영월문화예술회관에서 ‘창작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단종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특강을 연다.
대구 군위군은 다음 달부터 ‘군위시티투어’ 코스에 유배생활을 하는 단종 곁을 지킨 엄흥도의 묘소(산성면 화본리)를 포함시켰다. 충남 천안시는 영화에 등장하는 한명회를 알리기 위해 58초 분량의 유튜브를 제작했다. 31만 뷰를 기록한 유튜브에서 천안시는 “천만 영화가 탄생하고 영월이 아주 Hot(핫)해졌어요. 천안시 알려야 해서 숟가락 얹어볼게요”라며 “우리도 있어요. 극 중 인물 중 한 분의 묘소가요”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속창리에 있는 한명회 묘역 사진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