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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싱가포르의 부동산 교훈, 세금보다 공급

중앙일보

2026.03.15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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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화 내셔널부 기자
이달 초 이재명 대통령의 싱가포르 발언이 부동산 시장을 다시 흔들었다. “부동산 정책에 대해 많이 배워가야 할 것 같다”고 언급하면서다. 정치권과 시장에서는 곧 세제 강화가 뒤따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대통령이 앞서 SNS를 통해 실거주 1주택과 비거주 1주택, 다주택자를 구분하는 정책을 쓰겠다고 밝힌 점도 영향을 미쳤다. 싱가포르는 투기 차단을 위해 실거주와 투자 목적 주택을 구분해 보유세와 취득세를 매긴다. 다만 실거주 여부와 관계없이 3년 이상 보유한 뒤 매도하면 양도세가 없다.

하지만 싱가포르 부동산 정책의 핵심이 과연 세금일까. 이 대통령이 주목했듯 ‘좁은 국토에 많은 사람이 살면서도 주택이나 부동산이 사회문제가 되지 않는 싱가포르의 비결’은 세금 정책 이전에 있다. 국가가 직접 질 좋고 값싼 주택을 대량 공급하는 정책이다.

HDB가 도심에 공급한 아파트 ‘피나클 앳 덕스턴’의 전경. [사진 HDB]
싱가포르에는 600만여명이 살고, 이 가운데 80%가 공공주택에 거주한다. 싱가포르 주택개발청(HDB)이 건설한 주택이다. 싱가포르는 1959년 영국 식민 통치가 끝나고 자치정부를 세운 직후인 1960년 HDB를 설립했다. 주택 문제를 국가 핵심 과제로 삼았고, 정부는 민간 토지를 매입해 공공주택을 지었다. 1965년 완전 독립 때까지 HDB가 공급한 공공주택은 5만 가구가 넘는다. 이 정책은 60년 넘게 이어졌다. 그 결과 지금 싱가포르 국토의 약 90%는 국가 소유다. 공공주택은 사고팔 수 있지만 토지 소유권은 정부가 갖는다.

처음에는 속도전이 중요했다. 원룸형 아파트를 지어 대량 공급했고, 이어 투룸·포룸 주택으로 규모를 키웠다. 한때 ‘성냥갑 아파트’라는 오명도 있었지만, HDB는 거주자의 요구에 맞춰 공공주택의 질을 높였다. 2000년대 들어서는 민간 건축 회사에 고품질 공공주택 설계를 의뢰하기 시작했다. 싱가포르 도심의 HDB 아파트 ‘피나클 앳 덕스턴’은 국제건축디자인 공모전에서 뽑힌 안이다. 50층 규모의 7개 동이 스카이 브리지로 연결되어 있다. 세계에서 가장 긴 옥상 정원으로도 유명하다. 초고층 빌딩상과 최우수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 등 국제 건축상도 여럿 받았다.

싱가포르 정부는 공공주택을 저소득층만 사는 임대주택이 아니라 중산층도 사는 ‘보통의 집’으로 만들려 했다. 서울에서는 지난 20년간 약 125만 가구의 주택이 새로 공급됐다. LH 공급 물량은 1만5000가구도 되지 않는다. 전체 공급 물량의 1.2% 수준이다. 싱가포르의 해법은 세금보다 먼저 집이었다. 시장보다 강한 정부는 결국 더 많은, 양질의 집을 짓는 정부 아닐까.





한은화([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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