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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옛이야기 된 한·일 스포츠 민족주의

중앙일보

2026.03.15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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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누키 도모코 도쿄 특파원
미국에서 열리고 있는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과 일본이 아쉽게도 8강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동안 드라마틱한 경기를 보여준 선수들에게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일본에선 이번 대회 모든 중계를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가 독점하고 있다. 넷플릭스에 가입하지 않으면 경기를 볼 수 없다. 일본이 우승한 2023년 대회에 국민적 열광이 대단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지상파 방송이 1라운드를 포함한 총 7개 경기를 중계했는데 시청률이 모두 40%를 넘었다. 이렇다 보니 대회 주최측은 이번 방송권료를 3년 전의 5배인 150억 엔(약 1408억원)으로 설정했고, 이를 지불할 수 있는 넷플릭스가 중계권을 획득한 것이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무료로 편히 볼 수 있는 지상파 중계가 없다니 너무하다”는 부정적인 시작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시작해 보니 의외의 효과가 나타났다. 넷플릭스가 모든 경기를 일본어로 중계해주기 때문에 외국팀 경기도 재미있게 시청할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시각이 확산됐다. 원래대로 지상파가 중계권을 갖고 있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본 팀의 경기 외에는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10일 일본 도쿄돔에 이정후의 포스터가 걸려 있다. 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9일에 열린 한국 대 호주전이다. 일본 팀은 이 시점에서 이미 조별리그 통과를 확정 지은 상태여서, 어쩌면 일본인들에게는 그다지 관심을 가질 만한 경기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경기가 끝난 직후 X(옛 트위터)엔 양국 팀에 관한 글이 꽤 많이 올랐다. 특히 우익수 이정후가 9회 말 1사 1루에서 슬라이딩으로 공을 잡아내는 모습과 8강 진출을 확정 짓고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에는 “정말 멋있다” “일본인이 봐도 재미있는 경기였다” “한국 축하한다” 등 찬사가 쏟아졌다. 그의 아버지 이종범이 과거 일본 프로야구팀인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뛰었던 인연으로 “주니치에 와주길 바란다”는 러브콜까지 나왔다.

그래서인지 일본과 체코전이 열린 지난 10일 도쿄돔에서 C조의 각 팀을 소개하는 화면에 ‘KOREA’가 나오자 사진을 찍는 일본인도 있었다. 일본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이정후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이 품절되기도 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한·일 양국 간 민족주의가 고조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제 그건 옛날이야기가 된 듯하다. 한국이 오타니 쇼헤이나 야마모토 요시노부를 응원하는 것처럼, 일본도 이정후·김혜성 등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오누키 도모코([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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