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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의 시시각각] 김어준 정치와 여당의 뒤늦은 ‘현타’

중앙일보

2026.03.15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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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어준 유튜브에서 제기된 ‘공소취소 거래설’이 일파만파다. 패널로 나온 장인수 전 MBC 기자는 ‘단독 보도’라며 자랑했지만, 사실 취재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허술한 내용이다. “대통령의 최측근인 정부 고위 관계자가 ‘내 말이 곧 대통령의 뜻’이라며 고위 검사 다수에게 대통령 사건의 공소 취소를 요청했다”는 게 요지였다. 전언(“공소 취소를 대통령이 원한다”)의 전언(“이런 내용을 대통령 최측근이 이야기했다는 걸 들었다”)을 검증도 없이 공개했다.

‘공소취소 거래설’에 여권 화들짝
내부 향한 음모론에 절연 움직임
‘괴물’ 키웠던 건 민주당 아니었나

기자가 이 정도 설익은 취재를 들고 와 ‘단독’이라고 흥분하면 언론사 데스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제대로 된 데스크라면 “복수의 취재원에게 확인했거나 다른 증거가 있나”부터 물어볼 것이다. 다음 질문은 “반론을 받았나”일 것이고, 그다음은 “취재원이 제보한 목적은 뭘까”라는 의심일 것이다. 신입 기자들도 알고 있는 취재 기초 중의 기초다.

함량 미달의 ‘단독’에 정치권이 술렁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취재 내용의 개연성을 마냥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여권이 이 문제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의원 3분의 2가 공소취소 모임에 참여하고 있고, 정청래 대표는 대통령을 ‘조작 기소’한 검사들을 감방 보내겠다고 협박했다. 권력 내부 비밀의 문이 살짝 열린 건지, 터무니없는 가짜 뉴스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하게 선을 그어야 논란은 사그라들 것이다.

취재를 빙자한 ‘설 제기’는 김어준씨의 전매특허다. 18대 대선 개표 부정 의혹을 제기했던 ‘K값’, 세월호 고의 침몰설, 오세훈 시장 관련 ‘생태탕집’ 소동,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폭로 배후설 등이 다 이런 식이었다. 김씨는 이런 음모론을 ‘합리적 의심’이란 말로 포장했다. 일부 여권 인사들은 사실 검증과 균형에 신경 쓰는 제도권 언론을 ‘재래식 언론’이라고 조롱했다.

지금의 여권이 김씨의 음모론을 정치적 동력으로 이용해온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김씨는 파안대소하며 여당 출마자들에게 큰절을 시킬 정도로 ‘상왕’이 됐다. 이 대통령도 취임 전 수차례 그의 스튜디오를 찾았고, 정청래 대표는 지난 당대표 선거에서 사실상 김씨의 지원을 받았다. 그랬던 여권이 이제 새벽 닭 울기 전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듯 김씨를 부인하고 있다. “검증 불가능한 내용을 사실처럼 유통했다”(한정애 정책위의장), “그의 방송에 출연하지 않은 지 꽤 오래됐다”(박찬대), “언론 기능을 자처했으니 응당한 책임을 지라”(더민주전국혁신회의)며 절연에 나섰다.

사실 문제의 방송은 이 대통령을 공격한다기보다는 대통령의 안위 문제가 ‘검찰 개혁’(수사권 완전 박탈) 완화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진행자 김씨의 책임을 묻기에도 모호한 구석이 있다. 김씨는 “대통령을 참칭한 건지 어떻게 아나”는 등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씨가 더 이상 여권의 ‘스피커’ 혹은 ‘상왕’ 노릇을 하기는 이제 힘들어 보인다. 김씨는 이미 여권 내 ‘명청대전’에서 정청래 대표 편을 들고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무엇보다 임기 초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렸다. 김씨가 여권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상당 부분 상대(보수 진영)에 대한 조롱과 멸시, 음모론이었다. 그런 싸움의 기술이 같은 진영 내 다른 정파를 향하다 역풍을 맞았다. 당 내부 권력 다툼에 끼어들어 선수로 뛰려던 김씨의 오만함이 빚은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된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여전히 남 탓하는 화법이 거슬리지만, 지금이라도 ‘괴물’을 직시했다니 다행이다. 하지만 너무 늦은 ‘현타’(현실을 깨우치는 시간)다. 보수든 진보든 이미 김어준류 싸움의 기술에 젖어 들며 우리 정치는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





이현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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