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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축구 닮아가는 韓야구…"국내서 왕노릇, 힘든 해외도전 하겠나" [뒤로가는 K스포츠]

중앙일보

2026.03.15 13:00 2026.03.1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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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한국시간) 2026 WBC 도미니카공화국과의 8강전 도중 한국 선수단이 더그아웃에서 굳은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지켜보고 있다. 한국은 0-10 콜드게임 패배를 당했다. [연합뉴스]
지난 14일(한국시간) 미국 마이애미 론디포파크. 한국 야구대표팀은 2026 WBC 8강에서 도미니카공화국에 0-10, 7회 콜드게임으로 졌다. 17년 만에 겨우 8강에 올라갔는데 단 한 경기 만에 KO패로 끝났다. 이튿날 일본도 8강에서 베네수엘라에 졌다. 그러나 두 패배의 결은 달랐다. 세계 최강과 접전을 펼친 일본과 달리 한국은 정규이닝도 채우지 못했다.

0-10 패배는 합당한 결과다. 구속 비교만으로도 알 수 있다. 이번 대회 한국 투수진의 직구 평균 구속은 90마일(약 145㎞), 20개국 중 18위다. 도미니카(약 155㎞), 미국(약 154㎞), 일본(약 152㎞)과 체급이 달랐다. 2023년 WBC에서 한국은 89.9마일(약 144.7㎞)로 16위였다. 대만은 3년 전보다 6㎞가 빨라졌는데 한국은 제자리걸음이다. 한국보다 볼 스피드가 느린 나라는 호주와 세미프로 수준의 체코뿐이다. 어쩌다 전력투구한 공도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한 비율이 절반에 못 미쳤다. 한국 타선은 도미니카 투수진을 상대로 2안타에 볼넷 1개를 기록하며 무려 11개의 삼진을 당했다. 헛스윙 비율은 40%를 넘었다.

본지 기사엔 댓글이 쏟아졌다. "이 경기 안 본 내가 진짜 승리자"라거나 "마이너리그 더블A만 가도 죄다 150㎞대 투수인데, 그 애들이 최저임금 받으며 야구하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배에 지방 덕지덕지, 행복야구 하면서 수백억 연봉에 스타로 거들먹거린다"는 내용이 주다.



여자농구 연봉톱 4.5억, 최강 미국은 3.5억

틀린 말이 없다. 한국 야구 뿐 아니라 스포츠 전반에서 경기력은 추락하는데 몸값은 오히려 치솟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올해 KBO 소속 10개 구단 중 7개 팀이 아시아쿼터로 일본인 투수를 영입했다. 나도현 KT 위즈 단장은 일본 독립리그 출신 스기모토 고우키를 두고 "최고 시속 154㎞ 강속구로 KBO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기대한다. 아시아쿼터 연봉 상한은 20만 달러(약 2억7000만원)다. 대표팀 선발 중 FA인 고영표와 류현진은 각각 26억원, 21억원이다. 선발 로테이션을 꿰찰 수준의 투수를 한국인 선발의 몇 분의 일 값에 데려오는 셈이니 '가성비'가 압도적이다.
여자 농구와 배구는 더 심각하다. 2025년 기준, 한국 여자 농구 에이스의 연봉은 4억5000만원 선으로 세계 최고 무대인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최고 연봉(약 3억5000만원)보다 많다. 여자 배구 연봉 상한은 5억4000만원으로 일본 여자 배구 최고 연봉(약 1억원)의 다섯 배가 넘는다.

이러한 기현상의 원인 중 하나는 폐쇄적 보호 장벽이다. 한국 스포츠 리그는 외국인 출전 제한이 강하다. 실력과 무관하게 '한국 선수'라는 이유만으로 귀한 대접을 받는 구조다. 이는 중국 축구가 걸었던 길과 판박이다. 2010년대 중국 프로축구 수퍼리그는 막대한 자본을 앞세워 카를로스 테베스, 오스카르 등 세계적 스타들을 끌어모았다. 자국 선수들 몸값도 덩달아 폭등했다. 기량 미달 선수들조차 수십억원의 연봉을 받았다. 유럽이나 남미 같은 치열한 무대에 도전할 이유가 없었다. 거품은 금세 꺼졌다. 리그는 재정 위기로 고사했고, 축구대표팀은 아시아 변두리로 밀려났다.

한국 마라톤의 몰락 과정도 경로가 같다. 1990년대 황영조·이봉주가 세계를 제패했다. 이후 뒤를 이은 선수들은 우후죽순 생겨난 실업팀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 받는 대신 세계 무대와 단절됐다. 지금 한국 마라톤 남자 기록은 아마추어 톱클래스 러너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보호가 길어지면 경쟁력이 아니라 의존성이 자란다는 것을 마라톤이 먼저 증명했다.

구기 종목이 지금 그 몰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한 구단 관계자는 "국내에서 과보호받으며 왕 노릇, 최고 대우를 받는데 굳이 생존이 힘든 해외 도전을 택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보호 정책은 단기적으로 리그를 유지한다. 그러나 길어지면 선수는 나태해지고, 리그는 고립되고, 국가대표는 약해진다.

반면 일본 선수들은 도전한다.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는 23세였던 2017년, 25억원이라는 헐값 계약금을 받고 MLB 무대에 진출했다. 25세 미만 해외 선수는 아마추어 계약만 가능한 MLB의 규정 때문이다. 2년 간 일본 프로야구(NPB) 무대를 더 뛴 뒤 도전하면 2800억원대 이적료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오타니는 거액을 포기하고 이른 도전을 택했다. NBA에서 활약 중인 가드 가와무라 유키(시카고 불스)도 자국 내 30억원대 연봉 제의를 뒤로 하고 하부 리그를 전전하는 9억원대 계약에 몸을 던졌다.

한국 야구가 구속 10㎞ 차이가 나는 도미니카에 당한 0-10 콜드게임 패배는 '닫힌 리그'에서 형성된 거품이 국제 표준 앞에서 무너진 물리적 증거다. 김정효 서울대 연구 교수는 "한국 스포츠는 병역 혜택과 짭짤한 연봉이라는 온실 속 보상 체계가 선수를 자족적 울타리 속에 가둔다"고 지적했다. 온실 안에서 자란 선수가 국제무대에서 버티지 못하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중국이 20년에 걸쳐 증명했고, 한국이 지금 그 수순을 밟고 있다. 보호막을 걷어내지 않으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이해준.피주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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