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과 중동 전쟁에 따른 물류비 부담에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까지 겹치면서 전자업계가 전방위적인 비용 압박에 맞닥뜨렸다. 특히 휴대폰과 노트북PC 등 완제품을 만드는 세트 업체들은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15일 삼성전자의 2025년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디스플레이를 제외한 삼성전자의 원재료 매입액은 99조9475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91조8398억원)보다 8.8%, 8조원 이상 늘어난 수치다.
특히 휴대폰·TV·생활가전 등을 담당하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의 원재료 매입액은 74조5693억원으로 전년보다 약 7조원 증가해 전체 비용 증가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비용 부담이 커지자 삼성전자는 DX 부문을 중심으로 긴축 경영에 들어갔다. 최근 열린 최고재무책임자(CFO) 회의에서는 비용 절감 목표도 설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 DX 부문에서는 사장을 제외한 부사장 등 임원들이 출장에서 10시간 미만 비행편을 이용할 경우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해당 조치는 이르면 다음 주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전자업계의 비용 부담이 커진 배경에는 반도체 가격 상승이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PC용 D램 가격은 전 분기보다 두 배 이상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메모리 가격이 계속 오르면서 제조 원가 부담이 늘어나자 일부 휴대폰과 노트북 제품은 출고가를 인상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원가 상승은 주요 사업부의 수익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증권사들은 반도체 ‘수퍼 사이클(초호황기)’을 근거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부문 실적 추정치는 올려잡는 반면, DX부문 실적 추정치는 줄줄이 내려잡고 있다. DX부문에서 휴대폰 등 모바일 사업을 담당하는 MX사업부의 경우 지난해 12조9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올해는 영업이익이 5조원 안팎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LG전자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메모리 가격 상승과 수요 둔화가 겹치면서 가전·TV 사업의 수익성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수요 회복이 불확실한 만큼 당분간 비용 절감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유가와 물류비가 계속 오를 수 있다는 점도 전자업계 비용 압박을 키우는 변수로 꼽힌다. 중동 지역 긴장이 장기화할 경우 해상 운임과 항공 화물 운임이 동시에 오르면서 기업들의 원가 부담이 확대될 수 있다. LG전자의 경우 코로나19 발발로 글로벌 물류대란이 이어졌던 2021년 물류비가 약 4조7000억원으로 전년(약 2조9000억원)보다 60% 넘게 늘어 수익성에 타격을 받았었다.
대외 변수에 더해 노조 이슈도 전자업계의 부담 요인으로 거론된다. 증권가에서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중심의 AI 메모리 호황으로 삼성전자 DS부문의 올해 영업이익이 최대 150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적 기대가 커지면서 성과급 확대 요구도 거세지는 가운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는 지난 9일부터 총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 중이며, 가결될 경우 5월21일부터 최대 18일간 총파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종우 남서울대 교수는 “세트업체들은 이미 반도체 가격 상승과 물류비 부담으로 원가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여기에 인건비 부담과 IT(정보기술) 수요 둔화까지 겹치면 전자업계의 경영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