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의 안보 부담 확대를 강조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란전에 본격적으로 동맹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한국을 비롯한 동맹 4개국과 중국에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 유지를 위한 전투함 파견을 압박하면서다. 한국으로서는 주한미군 방공 자산 반출에 이어 두번째 ‘유탄’을 맞은 셈인데, 트럼프 행정부 1기에 이어 이번에는 실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한복판으로 끌어들이는 격이라 ‘호르무즈 청구서’의 가격이 한층 높아졌다. 향후 트럼프가 이에 대한 기여 수준에 따라 동맹 간 순위 매기기를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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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에도 '안보 무임승차' 적용
트럼프는 14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연달아 두 건의 게시글을 올리며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도로 피해를 입은 국가들은 해협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미국과 함께 전투함을 파견할 것”이라며 “중국, 프랑스, 일본, 한국, 영국”을 콕 찍어 나열했다. 또 “인위적인 제약의 영향을 받는 중국, 프랑스, 일본, 한국, 영국 등이 호르무즈 해협이 더 이상 완전히 참수된 국가의 위협이 되지 않도록 이 지역에 선박을 파견하기를 바란다”며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석유를 수입하는 세계 각국은 이 해협의 안전을 책임져야(must take care)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는 공동의 노력이었어야 했다. 이제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한 건 트럼프가 동맹·우방국에 보인 ‘안보 무임승차’ 인식을 이번 이란 사태에도 드러낸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
트럼프는 1기 때인 지난 2019~2020년에도 이란 방공부대의 미국 정찰 무인기 격추와 미국의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IRGC) 사령관 제거 등으로 호르무즈 해협 위기가 고조됐을 때 동맹 카드를 꺼냈다. 한국과 일본 등에 상선 호위 연합체인 국제해양안보구상(IMSC)에 참여하라고 요구했다.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이 진행 중이던 한국에는 이를 한국 측이 낼 방위비의 총액과 연동해 동참을 압박했다. 이에 정부는 다국적 작전인 IMSC에 직접적으로 참여는 않되, 청해부대의 작전지역을 기존 소말리아 아덴만 일대에서 호르무즈 해협으로 확대하는 식으로 기여를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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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군함 파견에 靑 “방안 모색”
지금은 당시보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 수위가 한층 높아졌고, 이란은 이를 장기전으로 끌고가겠다는 의도를 명확히 하고 있다. 이란의 새 최고 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첫 메시지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지렛대를 계속 사용돼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런 가운데 전투함 파견은 사실상의 파병이 될 수 있어 정부의 고민은 더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방미 중이던 김민석 국무총리는 전날(13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김 총리를 만난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는데, 결과적으로 그의 속셈은 이란전과 관련한 한국의 협력을 끌어내는 데 있었던 셈이라 한·미 간 동상이몽이 부각되는 모양새가 됐다.
또 트럼프 행정부 1기 당시 청해부대의 작전 반경을 넓혔을 때도 우리 군함이 직접 호르무즈 해협 안으로 들어간 적은 없다. 호르무즈 해협의 가장 좁은 통로의 폭은 34㎞수준으로, 암초가 많고 수심이 얕은 점을 고려하면 실제 항로의 폭은 3㎞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좁은 해역에 기뢰가 설치될 경우 위험은 훨씬 커진다.
실제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미 해군 당국자들이 이란의 드론과 대함 미사일로 인해 호르무즈 해협이 ‘킬 박스’(kill box·집중 공격 구역)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미국은 군함을 이 지역에 보내는 것을 보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15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소셜미디어 언급에 주목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한·미 간에 긴밀하게 소통하고 신중히 검토하여 판단해 나갈 것”이라며 “국제 해상교통로의 안전과 항행의 자유는 모든 국가의 이익에 부합하며 국제법의 보호 대상으로, 이에 기반해 글로벌 해상 물류망이 조속히 정상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는 중동 정세와 관련국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우리 국민 보호와 에너지 수송로 안전 확보를 위한 방안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다”라고 했다.
정부는 내부적으로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다. 우선 국회가 지난해 처리한 청해부대 파견연장 동의안에는 “유사시 우리 국민 보호 활동 시에는 지시되는 해역”으로 작전 반경을 넓히는 예외조항이 있어 이를 근거로 군함을 이동시키는 게 가능하다. 현재 청해부대는 제47진인 대조영함(DDH-977·4400t급)이 오만 남단 살랄라 항구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만 정부 고위 관계자는 “2020년에는 단독 작전이었는데, 이번엔 다국적군 형태로 군함 파견을 요청 받을 가능성도 있다”며 “그럴 경우 별도의 국회 동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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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성적표' 벼르는 트럼프
트럼프가 콕 찍어 거명한 5개국 가운데 중국을 제외하고 프랑스·일본·한국·영국 등 4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다. 자신의 도움 요청에 어떻게 응하는지에 따라 동맹 성적표를 매길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호주 역시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해 타격을 입는 미국의 동맹인데, 트럼프는 이번에 호주를 거명하지 않았다. 호주는 이란 사태 국면에서 보잉 E-7A 웨지테일 조기경보통제기와 첨단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걸프 국가에 지원하는 등 선제적으로 움직였다.
트럼프가 언급한 동맹 중 영국과는 미군기지 사용 문제로 이미 한 차례 갈등을 겪었다. 트럼프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와 19일 정상회담을 하는데, ‘성의 표시’를 압박한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미국은 전세계에서 손 꼽히는 일본 해상자위대의 기뢰 제거 부대인 소해함대의 호르무즈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정상회담 합의물인 공동설명자료(조인트 팩트 시트)를 통해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 3.5%로 증액하기로 약속하는 등 포괄적 안보 비용 부담 조치를 약속해 미 측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트럼프의 전투함 파견 요청은 동맹 평가의 판도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 최근 미국이 한국에 붙여온 수식어인 ‘모범 동맹’의 기준이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자산 반출 규모도 더 커질 수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현지 매체들은 트럼프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 안정을 위해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 중인 강습상륙함 트리폴리함 등 해병대 병력을 중동으로 이전 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상군 위주의 고정 병력 위주인 주한미군의 경우 방공 전력 외에 병력 이동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지만, 중동 상황이 급변하면 이 역시 장담할 수 없다는 시각도 작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