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오전 9시 단국대 죽전치과병원 내 경기 권역 장애인구강진료센터. 치과 진료를 위해 1년 만에 병원을 찾은 중증 장애인 A씨(21)는 진료실 입구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괜찮다"는 아버지 말에도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의료진들은 "무서운 거 아니다"라고 거듭 설득했지만, 긴장한 A씨는 발이 바닥에 붙은 듯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A씨는 화장실에 다녀온 뒤에야 진료용 의자에 겨우 앉았다.
유찬선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A씨 얼굴에 마취용 마스크를 씌우며 "풍선을 분다고 생각하고 후후 불어볼까"라며 그를 달랬다. 그 사이 간호사 4명이 A씨의 팔과 어깨를 잡고 곁을 지켰다. 마취가 시작되기까지는 총 40여분이 걸렸다. 병원 관계자는 "과격한 환자가 오면 의료진이 살이 뜯기거나 손가락을 물리는 경우도 있는데 오늘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다"고 말했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것은 삶에 필수지만, 중증 장애인에게는 여전히 쉽지 않은 일상이다. 칫솔질하기 힘들어 치아 상태가 나쁜 데다 진료 시 협조가 힘들어 전신 마취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게다가 이들을 진료할 수 있는 치과를 찾기 어렵다.
그나마 이들을 위한 장애인구강진료센터가 있지만, A씨처럼 진료 협조받기 어려워 전신 마취가 필요한 경우도 태반이다. 하지만 고질적인 마취과 의사 구인난이 치과 진료를 더디게 만든다. 센터 방문에 평균 5개월 가까이 대기하고, 일부 지역은 2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17개 장애인구강진료센터(중앙 1곳ㆍ권역 16곳)를 이용한 중증 장애인은 전체의 11.2%(83만8726명 중 9만3575명)에 그쳤다. 김동현 경기 장애인구강진료센터장(통합치의학과 전문의)은 "A씨처럼 보호자가 치과 진료에 관심이 있다면 그나마 낫지만 20대, 30대가 돼서야 치과를 처음 찾아 치료 시기를 놓쳐 전체 발치를 하는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이용률이 낮은 배경엔 인력 부족이 있다. 1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보윤 국민의힘 의원이 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장애인구강진료센터 17곳 가운데 부산·인천·광주(전남) 등 11곳(65%)에는 전담 마취과 의사가 없다. 중앙·서울·경기 등 6곳에만 전담 인력이 있는데, 이마저도 1~2명에 그쳤다.
장애인 치과 진료는 치과 의사와 마취과 의사가 함께하는 '원 팀' 진료 체계다. 하지만 진료가 고되다는 이유 등으로 마취과 의사들이 잘 오지 않는다. 복지부 조사에서 장애인 치과의 전신마취 시간은 비장애인의 약 9.3배 길고, 진료 난도는 4배 높았다.
원팀의 한 축이 무너져 제때 환자를 받기 어려운 상황. 중증 장애인이 센터 진료를 받으려면 평균 137일(지난해 12월 기준)을 기다려야 한다. 전국 최대 규모인 중앙 센터는 175일, 인천은 205일이다. 광주광역시는 가장 긴 660일에 달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전담 마취과 의사가 없는 곳은 특정 날짜에 한꺼번에 진료하니 대기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마취과 전문의 1인에 대한 인건비 예산을 올해 중앙 1억6000만원, 권역 1억100만원으로 각각 올렸다. 하지만 유찬선 교수는 “현재 보상 체계가 병원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 실제 진료를 담당하는 의료진에게 충분한 보상이 돌아가지 않는다. 의료진이 합리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진료 특성에 맞는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동현 센터장은 "장애인 치과학이 학부에서 필수 교육이 아니다 보니 장애인 진료에 대한 교육과 경험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철환 단국대 죽전치과병원 원장은 "안정적인 진료 체계 유지를 위해 지속적인 인력·시설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보윤 의원은 "이용률이 낮은 원인을 정부가 제대로 분석하고, 장애인구강진료센터 인력 기준과 수가·인건비 지원 체계를 전면 점검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