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발 전쟁의 포성이 길어지면서 수십 년간 월가를 지탱해 온 투자 공식이 힘없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치솟는 유가가 물가를 자극하자 주식과 채권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반 추락 중입니다. "피할 곳이 없다"는 탄식이 터져 나오는 지금, 믿었던 방패가 뚫린 월가의 고수들은 어디로 몸을 숨겼을까요? 그들이 새로 구축한 ‘비밀 기지’를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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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시소 공식’, 우산과 우비가 동시에 샌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넘나들며 물가를 자극하자, 시장엔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 물가 상승)’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경기가 아무리 나빠져도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중앙은행이 제때 정책 대응(금리 인하)에 나서지 못할 거란 우려가 함께 커졌습니다.
이는 시장 전체가 동시에 느끼는 공포입니다. 최근 시장에서는 주식과 채권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이례적인 흐름이 나타나며 전통적인 분산 투자 공식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마치 비 오는 날 우산과 우비를 함께 챙겼는데 둘 다 새는 상황과 비슷한 거죠.
주식이 떨어지면 채권이 오르며 서로 균형을 맞추던 전통적인 리스크 대응 방식, 이른바 60/40 포트폴리오(주식 60%·채권 40%)도 더는 잘 먹히지 않습니다. 이제 투자자들은 "어디로 도망가야 하나"라는 근본적인 고민에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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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의 각자도생 전략
무엇보다 운신의 폭이 작아졌습니다. 라지브 드 멜로 가마자산운용 글로벌 매크로 포트폴리오매니저는 “주식과 채권 간의 명백한 재조정이나 인플레이션 연동 채권, 금 같은 수단들도 예전만큼 포트폴리오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며 “효과적인 위험 분산 수단의 범위가 실질적으로 좁아졌다”고 말했습니다.
투자자들의 헤지 전략은 그야말로 제각각입니다. 마치 폭풍우 속에서 사람마다 다른 방향으로 피난처를 찾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주가가 급락할 때 보상받는 일종의 ‘재난 보험’ 성격의 금융 상품에 현금을 집중적으로 투입했습니다.
인베스코: 금융 자산 대신 실물을 택했습니다. 전쟁으로 공급이 막힐 수 있는 알루미늄과 곡물 등 원자재 매수를 추천하고 있습니다.
가마자산운용: 가장 확실한 피난처인 달러 현금을 쥐고 있으면서, 주식 선물을 활용해 하락장에 베팅하는 방식으로 위험을 방어 중입니다.
픽테자산운용: 주식 비중 자체를 확 줄였습니다. 대신 주가가 떨어지면 수익이 나는 '풋옵션'을 추가하고, 달러 비중을 높여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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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지대는 어디에?
투자자들이 찾는 것은 결국 안전지대입니다. 최근 월가에서는 전통적인 안전자산 대신 몇 가지 새로운 피난처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먼저 달러입니다. 변동성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달러 노출을 늘리는 전략이 다시 힘을 얻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 자산배분 리서치팀은 중동 전쟁이 1970년대 오일쇼크 수준의 에너지 충격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보고, 주식에 대해서는 ‘전술적 중립’, 현금에 대해서는 ‘비중 확대’ 포지션을 취했습니다. 바클레이즈 전략가 미툴 코테차는 “전쟁 전 시장의 기본 전략은 달러 약세에 베팅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달러가 다시 안전자산으로 돌아온 모습”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식 시장에서도 새로운 방어 전략이 등장했습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전략가 셜리 웡 등은 아시아 시장에서 원자력 에너지와 디지털 경제에 노출된 기업들을 묶는 ‘다중 테마 방어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다른 피난처는 에너지 충격에 강한 국가 자산입니다.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거나 공급망 의존도가 낮은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중국 주식은 에너지 공급이 비교적 다양해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가 낮다는 이유로 최근 장세에서도 비교적 견조한 흐름을 보였습니다. 호주 달러는 에너지 가격 상승과 금리 인상 기대에 힘입어 피난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석유와 천연가스뿐 아니라 식물성 팜유 등을 직접 생산하는 말레이시아 역시 에너지 충격에 강한 국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섣부른 움직임은 금물
그러나 잘 모를 때 섣불리 움직여선 안 됩니다. 애버딘의 투자 매니저인 페사 위바와는 “특히 최근의 가격 변동이 꽤 불안정하기 때문에 과도하게 단호한 변화를 주었을 경우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다”며 “공격적으로 포지션을 재조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인 위바와조차 통화 리스크만 약간 조정했을 뿐, 단기적인 변동성은 대체로 손 놓고 관망하는 중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유연성과 선별 능력입니다. 전문 투자자의 영역입니다.
올스프링 글로벌 인베스트먼트의 펀드 매니저 게리 탄은 “전통적인 헤지 수단들이 예전처럼 작동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자산 간 분산 투자보다는 종목 선별과 개별 리스크 관리에 더 집중하고 있다”며 “현금을 늘리고 방어주로 교체해 3월 포트폴리오의 위험 노출을 줄였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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