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승호 선임기자 =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에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자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중동산 원유를 실은 배들이 호르무즈 해협에 발이 묶이면서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세계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해상 운송은 전 세계 무역량의 80%를 담당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국의 압도적인 공격 앞에 벼랑 끝으로 몰린 이란이 '초크포인트'인 호르무즈 해협을 볼모로 잡자 중동산 원유 공급망이 마비됐다. 초크포인트는 해상 운송로에서 물자나 인력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요충지를 말한다.
호르무즈 이외에도 바르엘만데브 해협, 말라카 해협, 수에즈 운하 등 세계 주요 항로 곳곳의 초크포인트는 분쟁이 터질 때마다 순식간에 '전략 무기'가 된다.
게다가 아덴만, 말라카, 벵골만, 카리브해 등 인근 해역에서는 해적의 공격을 받기도 한다. 한국 정부가 소말리아 해역에 정기적으로 청해부대를 보내 한국 선박의 안전 확보에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각광을 받아오던 바닷길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이란전쟁으로 다시 불거지자, 지구 온난화로 북극 얼음이 녹으면서 열리고 있는 '북극항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좀 더 안전한 '대안 루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북극항로는 주로 수에즈 운하를 거쳐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기존 항로를 대체하는 효과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에즈 운하를 지나는 항해거리는 부산항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항까지 2만2천km에 달하지만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1만5천km에 불과하다. 운항거리를 30%가량 단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운항거리 단축은 연료비, 인건비, 용선료 등 관련 비용 감소로 이어진다. 실어 나르는 원자재나 상품의 물류비가 줄면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항로의 대부분이 러시아 영해를 통과하고 북극의 극저온 환경이라서 해적 활동도 원천적으로 차단될 수밖에 없다.
예상보다 해빙이 빨라지며 2030년대에는 연중 운항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원유와 천연가스, 희귀 광물 등 북극권 자원 개발에 대한 경쟁까지 치열해지면서 더욱 관심이 높아지는 양상이다. 러시아 의존도, 높은 쇄빙선 비용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긴 하지만 북극항로가 글로벌 공급망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러시아는 일찌감치 다각적인 채비를 갖춰왔다. 2018년부터 국영 원자력기업인 로사톰을 북극항로 운영사로 지정해 핵추진 쇄빙선 건조, 해상 안전시스템 유지, 선박 운항 관리 등을 맡겼다. 러시아는 현재 사실상 북극항로 운항 허가와 항로 관리권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도 차세대 해상로 확보와 러시아 독점 견제, 군사안보적 중요성 등을 염두에 두고 전략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육상·해상 실크로드 건설 전략인 '일대일로' 정책의 연장선에서 북극항로를 활용한 '빙상 실크로드'를 구상하고 있다.
국제 정세를 뒤흔드는 이란전쟁과 같은 소용돌이 속에서 위기와 도전은 공존하기 마련이다. 한국도 올해 하반기에 부산-로테르담 구간 북극항로 시범운항을 10년 만에 재개한다. 무엇보다 부산항이 북극항로의 거점항구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글로벌 공급망을 흔드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시대에 새로운 바닷길을 먼저 준비한 나라가 다음 시대의 해상 물류를 선도할 것이다. 북극항로에서 주요 거점이 될 수 있는 한국이 뒤처질 이유는 없다.
[email protected]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한승호
저작권자(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