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사흘 넘게 100달러 선을 넘나들고 있다. 고유가 사태가 장기화할 것이란 공포가 시장에 번지면서 원-달러 환율은 1500원을 넘어섰다(원화가치는 하락). 주간거래에서 1500원 선을 넘은 건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처음이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가격은 16일 아시아 시장이 열린 직후 3% 이상 올라 102.44달러까지 치솟았다. 국제유가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브렌트유 선물 가격도 106.50달러까지 상승했다. 브렌트유 가격은 지난 13일 100달러 선을 돌파한 뒤 내려오지 않는 상태다. 두바이유 가격은 한국시간 오후 4시 기준 5%가량 오른 127달러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주말 사이 미국이 이란의 하르그섬을 공격했다는 소식이 국제유가를 끌어올렸다. 하르그섬은 이란 석유 수출량의 90%가 거쳐 가는 핵심 거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하르그섬 내 석유 시설은 공격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시장은 추가 타격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란 역시 보복으로 14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의 푸자이라 항구에 드론 공격을 감행하며 맞불을 놨다. 푸자이라 항구는 호르무즈 해협의 우회 항로로 알려졌는데, 이날 공격으로 일부 석유 적재 작업이 중단됐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아시아ㆍ오세아니아 지역에 먼저 1억 배럴의 비축유를 방출하겠다”며 안정화 조치에 나섰지만 시장 불안감은 여전하다. S&P글로벌에너지는 “향후 몇 주 안에 호르무즈 해협 유조선 운항이 재개된다고 가정해도 연중 유가가 월평균 배럴당 70~100달러 사이에서 등락할 것”이라며 “수개월 이상 폐쇄된다면 유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원화가치는 17년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고유가 장기화에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강화한 영향이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7.3원 오른 1501.0원으로 개장했다. 주간거래에서 1500원 선을 넘은 건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9년 3월 12일(장중 고가 1500원) 이후 처음이다. 다만 개장 이후 당국 개입 경계감 등으로 환율은 하락 전환해 1497.5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협상 조건을 구체화하거나, 3월 말에 있을 미ㆍ중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출구 전략을 조율하는 시점 등이 변곡점이 돼 환율 하락 전환의 단초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그는 “전쟁이 예상보다 길어지거나 이란이 주요 산유국의 인프라 시설에 보복할 경우 1500원대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유뿐 아니라 알루미늄 등 원자재 시장으로도 공급 충격이 확산하고 있다. 특히 알루미늄은 중동 지역이 전 세계 생산량의 9%를 담당한다. 해상 운송 차질이 빚어지자 중동 기업들이 알루미늄 생산량을 감축하면서 가격은 전쟁 이전과 비교해 8%가량 뛰었다. 홍성기 LS증권 연구원은 “알루미늄 수급은 과거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과 유사하게 이번 전쟁의 숨은 뇌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에탄올과 요소 가격도 전쟁 전에 비해 각각 10%ㆍ35%가량 급등한 상태다. 뉴욕타임스(NYT)는 “비료 생산에 쓰이는 황 공급이 호르무즈 해협에 묶이면서, 세계농업 생산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