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이정현 살생부’에 발칵 뒤집혔다. 6·3 지방선거 국민의힘 공천을 주도하고 있는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16일 업무 복귀 하루 만에 김영환 충북지사에 대한 컷오프(공천 배제)를 결정한 게 발단이었다. 현역 시·도지사 중 첫 컷오프에 그치지 않고 박형준 부산시장과 대구시장에 출마한 현역 중진 전원에 대한 ‘물갈이 공천’이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자 “무자비한 학살”이란 당내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이 위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김 지사에 대한 공천 배제 결정과 관련해 “한 사람에 대한 평가 문제가 아닌, 정치 변화의 문제”라며 “시대와 세대 교체 요구를 힘 있게 실천할 지도자가 과감하게 등장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한 공관위원은 “4선 중진에다 장관까지 한 김 지사보단 새 인물을 후보로 내세워 인적 쇄신을 하겠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당 안팎에선 “김 지사가 금품 수수 의혹과 오송 참사 문제로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데다 지지율이 저조한 부분이 컷오프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모든 지역 일정을 취소하고 상경한 김 지사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무 기준도 없이 컷오프를 당했다”며 “절대 승복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김 지사는 페이스북에도 “특정인을 정해 놓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고 썼다. 지역 정가에선 이 위원장이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낸 1986년생 여성 정치인 김수민 전 의원을 충북지사 후보로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 위원장은 김 지사 컷오프 결정 직후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배제 문제를 놓고 일부 공관위원들과 정면 충돌했다. 이 위원장이 “혁신 공천을 위해 박 시장을 컷오프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다른 공관위원들이 “절차적 정당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맞섰기 때문이다. 부산시장 선거에는 박 시장과 주진우(초선) 의원 2명이 후보 등록을 했다. 박 시장을 배제할 경우 주 의원의 단수 공천이 불가피하자 곽규택·서지영·정희용 의원 등 일부 공관위원은 반발하며 회의장을 떠났고 관련 논의는 중단됐다.
최근 당내 현안에 침묵해오던 박 시장은 페이스북에 “혁신 공천이란 이름으로 당을 망하게 하는 행위이자 망나니 칼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며 강력 반발했다. 주진우 의원도 “저는 경선을 진심으로 원한다”고 밝혔고, 부산 지역 의원들은 “한 쪽 날개를 부러뜨려 최종 후보로 나설 후보의 경쟁력을 스스로 낮추는 결정”이라는 입장문을 냈다. 송언석 원내대표도 “경선을 해야 한다”는 지도부 분위기를 전했다.
대구시장 공천을 둘러싼 분위기도 심상찮다. 이 위원장이 후보로 나선 중진 전원을 정조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시장 예비후보는 주호영(6선)·윤재옥(4선)·추경호(3선)·유영하(초선)·최은석(초선) 의원 등 현역 의원 5명과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 총 9명이다. 한 공관위원은 “이 위원장은 주호영·윤재옥·추경호 등 중진은 모두 배제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고 했다. 그럴 경우 이진숙 전 위원장과 초선의 유영하·최은석 의원이 경쟁하는 3파전이 성사된다.
주호영 의원은 채널A 라디오쇼 ‘정치 시그널’에서 “중진에게 컷오프를 한다면 중진들 다 국회의원 그만두게 해야 한다. 절대 승복할 수 없다”며 “경쟁력 없는 후보를 내세우면 민주당 시장 만들어주려고 해당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주 의원은 이 위원장의 발탁 배경에 관한 의혹도 제기했다. 주 의원은 “우리가 듣기로는 이 위원장을 고성국 유튜버가 추천을 했고, 고성국씨가 이진숙 전 위원장을 손 잡고 다니면서 선거 운동을 하니까 그 주문에 따라서 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내 반발이 거세지고 있지만 이 위원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개혁에 저항이 없으면 개혁이 아니다”며 “장동혁 대표로부터 공천 전권을 받은 만큼 털 끝만큼도 후퇴는 없다”고 못박았다. 이 위원장은 지난 13일 “공천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전격 사퇴했다가 장 대표로부터 공천 전권을 보장 받고 지난 15일 복귀했다. 한 공관위원은 “위기의 당을 되살리려면 중진과 현역 단체장의 희생을 바탕으로 정치 새 바람이 필요하다는 게 이 위원장의 확고한 생각”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후보 등록을 두 차례 거부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17일 마감하는 3차 접수에 응할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장동혁 대표는 16일 오 시장이 그간 인적 쇄신 대상으로 지목해온 박민영 미디어대변인에 대한 재임명 안건을 유보하며 한 발 물러서면서도 또 다른 핵심 요구 사항인 혁신 선거대책위원회 구성은 거부했다.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이날 “장 대표를 2선으로 물러나게 하는 혁신 선대위라면 동의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대해 오 시장 측은 “혁신 선대위 구성과 관련한 진전된 메시지가 있어야 후보로 접수할 수 있다는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