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시절 4시즌 29경기, 20득점. 한 시즌 평균 5득점, 경기당 0.69득점, 출전 시간은 3분19초. 그게 전부였다. 2003년 은퇴 후 그는 친인척의 권유로 해외에서 ‘건설 폭파’를 배울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의 성실함을 눈여겨본 구단이 홍보실 업무와 비디오 분석을 맡아달라고 요청했고, 손창환은 다시 농구 곁에 남았다.
22년이 흘렀다. 이제 그 손이 KBL 코트에 도화선을 당기고 있다.
손창환 감독이 이끄는 프로농구 고양 소노의 돌풍이 무섭다. 소노는 15일 홈인 고양 소노 아레나에서 서울 삼성을 98-75로 꺾고 7연승을 질주했다. 창단 이후 최다 연승이다. 이 승리로 소노는 24승 23패, 승률 5할을 넘어서며 부산 KCC와 공동 5위로 올라섰다.
올 시즌 8~10위권 전력으로 평가받던 소노의 반란은 손창환 감독 없이는 설명이 안 된다. 그런데 이 반란에는 숫자 하나가 더 붙는다. 1997년 KBL 출범 이후 총 62명의 감독·감독대행이 있었다. 고려대·연세대·중앙대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건국대는 한 명도 없었다. 손창환은 KBL 첫 건국대 출신 사령탑이다.
건국대는 농구 명문이 아니다. 매년 드래프트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학교가 아니다. 손창환은 199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7순위로 안양 SBS에 지명됐다. 김성철·홍사붕·윤영필 등 주전 선수들에 밀려 4시즌 내내 백업에 머물다 2003년 유니폼을 벗었다. “휴식 날 선배들에게 술 한 잔 얻어먹고도 숙소로 돌아와 훈련했다. 정말 열심히 했지만 재능을 타고난 선수들을 이길 수가 없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은퇴 후 그는 홍보팀을 거쳐 SBS 방송사를 직접 찾아가 영상 편집을 배웠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히딩크 사단이 쓰던 비디오 편집 시스템을 농구에 접목했다. 2005년부터 10년간 안양 KT&G·KGC 인삼공사의 전력분석원을 맡아 2011~12시즌 팀 창단 최초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현장에서 경험했다. 이후 코치로 10년. 선수 은퇴 후 꼬박 20년을 그라운드에서 쌓았다.
전희철(서울 SK)·이상민(KCC)·문경은(수원 KT). KBL 코트를 주름잡던 스타들이 감독으로 즐비하다. 손창환의 이름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이름값’들과 당당히 맞붙고 있다.
“사령탑 제의를 받고 일주일을 고민했다.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 수락했다”고 했지만 그의 감독 첫 시즌 출발은 순탄치 않았다. 3연패로 시작해 4라운드 초반까지 11승 20패. 눈앞이 캄캄할 법도 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7연승을 거둔 직후에도 “다음 상대 경기를 5개는 봐야 한다”고 했다. 모처럼 주어진 휴식일에도 “집에서 밀린 빨래를 하다 출근 준비 중”이라고 했다. ‘고양 아레나 지박령(어떤 장소를 떠나지 못하는 영혼)’이라는 별명이 괜한 게 아니다.
소노는 최근 14경기에서 12승 2패를 달리고 있다. 목표를 묻자 짧게 답했다. “처음엔 6강이 목표라고 했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선수들과 함께 더 큰 무언가를 이룰 수 있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