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은 진즉부터 불안했다고 한다. 경남 함양군 휴천면 송전마을 이장 석연상(71)씨의 말이다. 이 마을은 지난달 21일 대형 산불로 번진 함양 마천면 한 야산에서 2㎞가량 떨어진 곳에 있어 당시 주민 69명이 긴급 대피했다. 이 산불 발생 전, 올해에만 마천면과 휴천면에서 2번, 1번씩 불이 났다는 게 석씨 기억이다. 그는 “맨날 불날까 겁나스, 이거 방화 아닌가 생각했지”라고 말했다.
당시 마을 주민들 사이에선 방화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있었다. 2021년 고향인 함양에 홀로 이사 온 A씨(60대)였다. 산에서 고사리·버섯을 캐거나 고로쇠 수액을 채취, 판매하며 살았다. 작은 산불이 잦자, 과거 A씨 범행에 관한 소문을 들은 주민들은 불안에 떨었다. 오죽하면 함양 산불 발생 직후, A씨 범행을 의심한 인근 마을 이장이 곧장 A씨 자택을 찾기도 했다. 그때 집에 있었던 탓에 A씨는 잠시 의심의 눈길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찰의 끈질긴 추격 끝에 A씨 범행은 드러났다. A씨 정체는 15년 전 울산에서 96차례 산불을 내다 붙잡힌 희대의 연쇄 방화범 ‘봉대산 불다람쥐’였다. 16일 경남경찰청은 산불 방화 혐의로 A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뉴스에서 산불 소식을 보면 희열감을 느꼈다”며 “불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참지 못하고 불을 질렀다”고 진술했다.
경남경찰청 등에 따르면 A씨는 올해 1~2월 사이 경남 함양 마천면에서 2번, 전북 남원에서 1번 산불을 낸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중 1건이 지난달 21일 발생해 3일간 이어진 올해 첫 대형산불 함양 산불이다. 함양 산불로 산림 234㏊(축구장 328개 규모)가 피해를 입었다. 경찰은 ‘A씨 방화인 것 같다’는 주민 진술을 확보, A씨 등을 용의 선상에 두고 조사했다. 불이 난 3곳 주변에서 A씨의 SUV 자동차 등 흔적이 확인됐다. 특히, A씨가 산불을 낸 현장에는 특이점이 있었다. A씨가 다녀간 뒤 약 2시간 뒤 산불 신고가 접수된다는 점이었다. 이는 A씨가 휴지 등을 활용, 최초 불씨를 붙이고 한참 뒤 불이 타오르게 하는 ‘지연 발화’ 수법을 썼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당시 마을 이장이 집을 찾았을 때도 A씨는 자택에 있을 수 있었다. 경찰은 A씨가 범행 현장을 떠난 뒤 불이 번지게 해 알리바이를 만들려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A씨는 2005년부터 2011년까지 37차례에 걸쳐 울산 동구 봉대산에 불을 낸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21년 출소해 함양으로 갔다. 당시 경찰 조사에선 1994년부터 96차례 방화한 것으로 조사됐지만, 산불방화죄를 적용할 수 있는 공소시효가 7년이어서 7년간의 범행 건수로만 기소됐다. 당시 경찰은 A씨를 검거하기 위해 현상금 3억원을 내걸기도 했다. A씨가 수사망을 피해 범행을 계속 이어가면서 ‘봉대산 불다람쥐’란 별명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