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재판소원에서 재판을 ‘취소’할 경우 후속 절차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현행 법률에는 취소 결정 이후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헌재는 재판 취소 인용 결정 후 즉시 직전 재판의 효력이 정지된다고 보지만, 법원에서는 추가 입법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법 95조는 헌재가 법원의 결정을 ‘취소’하고 사건을 “관할법원에 환송한다”고 명시한다. 반면 이번에 개정된 재판소원법은 “재판을 취소한다”고만 돼 있다. 그 이후 절차에 대해서는 “법원은 헌재의 결정 취지에 따라 다시 재판해야 한다”고 명문화됐을 뿐, 어느 법원이 다시 재판하며 그때까지 종전 재판의 효력이 어떻게 되는지는 공백으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재판 취소 후의 절차는 ‘취소’에 뒤따르는 헌재의 주문(主文)이 어떤 형식으로 내려지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큰 틀에서는 “사건을 ○○법원에 환송한다”(파기환송) 또는 “재심을 개시한다”(재심)는 식의 주문이 예상된다.
취소 이후 절차에 대해 ‘파기환송’ 모델과 ‘재심’ 모델 중 하나로 이해하자는 시각도 있다. 재판 취소 후 절차를 ‘재심’이라고 본다면, 새로운 재판부가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는 종전 재판의 효력이 유지된다. 반면 ‘파기환송’ 구조에서는 헌재의 재판 취소만으로 법원 기존 판단은 효력을 잃는다. 예컨대 실형을 선고받은 A씨는 재심 구조에서라면 헌재의 재판 취소만으로 석방되지는 않는다. 재심 절차가 개시된 뒤 재심 재판부가 형집행정지 등을 결정해야 풀려난다. 반면 파기환송 구조에서는 헌재의 재판 취소 직후 기존 판결의 효력이 사라져 A씨는 바로 석방된다.
헌재는 공식적으로는 “파기환송 결정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해당 부분에 대해서는 입법이 없고, 헌재 결정이 향후 어떻게 나갈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손인혁 헌재 사무처장은 지난 10일 간담회에서 ‘취소된 재판은 법원에 재심으로서 돌아오나, 파기환송의 형태로 돌아오나’라는 질문에 “법원의 재판은 소급해서 효력이 상실된다”고 답했다. 이는 종전 재판의 효력이 상실된다는 점에서 ‘파기환송’ 구조와 유사한 설명이다.
반면 법원 내부에서는 법 개정 없이 재판 취소를 ‘파기환송’으로 간주하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독일과 달리 한국의 민·형사소송법은 헌재의 재판 취소 후 결정을 ‘환송’으로 규정해두지 않아 파기환송 모델은 기존 소송법 체계와 충돌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법원 관계자는 “기존 법제와 충돌을 막으려면 민·형사소송법을 각각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