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서경호의 시시각각] ‘착한 추경’ 뒤엔 무엇이 올까

중앙일보

2026.03.16 08:18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서경호 논설위원
트럼프가 열어버린 ‘판도라의 상자’ 이란전쟁으로 세계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다. 출구전략도 없이 시작된 전쟁은 트럼프가 전쟁 초기에 ‘소풍’에 비유했던 것과 달리 쉽게 끝날 분위기가 아니다.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이 많이 줄었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투자가 그동안 줄을 이었다지만 세계경제는 석유·천연가스 쇼크와 중동 위기에 여전히 취약하다는 냉엄한 현실이 드러났다. 한국 주식과 원화가치는 전쟁 당사국인 미국은 물론, 중동 의존도가 한국보다 높은 일본보다 더 떨어졌다.

고유가·고환율 ‘2008년 데자뷔’
2008년 추경 이듬해 ‘수퍼 추경’
추경 최소화해 재정 여력 남겨야

뉴스와 보고서에 ‘2008년’이 자주 언급된다. 뱅크오브아메리카가 최근 보고서에서 금융시장 흐름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상황과 닮아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2007년 7월 배럴당 70달러 수준이던 국제유가가 이듬해 7월 147달러까지 치솟으며 ‘서브프라임 사태’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란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한 데다 사모대출 부실로 인한 시장 불안이 커질 수 있어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는 이가 많다. 2008년 금융위기는 주택담보대출을 토대로 만들어진 다양한 은행 밖의 그림자금융이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터졌다. 사모펀드나 자산운용사가 기관 자금을 모아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중견기업에 대출이나 투자를 하는 사모대출도 비슷한 동티가 나기 시작했다.

정부가 조기 추경을 공식화했다.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추경의 필요성을 제시하자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국채 발행 없이” 하겠다고 답했다. 빚 내지 않고 초과 세수 등 이미 확보된 재원으로 추경을 편성할 때 ‘착한 추경’이라고 과거 정부·여당이 표현하곤 했다. 이번에도 ‘착한 추경’이 맞다.

2008년 고유가 때 우리 정부의 대응은 저소득층 유류비 부담 완화 등을 내건 추경이었다. 전년도 세계잉여금을 활용한 4조6000억원 규모의 ‘착한 추경’이었다. 정부가 6월 국회에 추경안을 제출했는데 석 달이나 지난 9월에 통과됐다. 광우병 촛불집회 여파로 국회가 파행된 탓에 추경의 생명인 신속성이 망가졌다. 그래도 9월 국회 예결위 회의록을 보면 추경 요건을 꼼꼼하게 따지는 장면이 보인다. 국가재정법 시행 이후 첫 추경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경기침체·대량실업 등 중대한 변화가 있거나 그런 우려가 있는지, 본예산 편성을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시급한지, 예비비 등 다른 수단으로는 상황 극복이 곤란한지, 연도 내 집행될 수 있는지 등을 따졌다.

이 대통령은 이란전쟁 이전에도 추경을 자주 언급했다. 국세청에 체납관리단 구성을 지시하며, 또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문화예술 분야 재정지원 확대를 거론하며 ‘추경’을 말했다. 예산안의 잉크도 마르기도 전에 나오는 추경 단어에 예산 공무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을 터다. 시급하지도 않고, 예비비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습관적으로 추경을 거론해서다. 과거 정부도 그랬으니 현 정부만 나무랄 일도 아니다.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추경은 국가재정법상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고 본다. 한데 추경이 거론되는 방식은 좀 어색하다. 아무리 ‘착한 추경’이라지만 15조원 안팎이라는 추경 규모부터 얘기가 나온다. 앞뒤 순서가 틀렸다. 무엇에 쓸지 결정하고 효과적인 예산 사업을 선별하는 게 먼저다.

2008년 ‘착한 추경’ 뒤엔 2009년 본예산과 29조원의 사상 최대 ‘수퍼 추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퍼 추경은 착하지 않았다. 대규모 적자 국채를 발행해야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하면서 주요 20개국(G20)은 대대적인 정책 공조에 나섰고, 한국도 ‘선제적이고 과감하며 충분하게’ 재정을 쏟아부어야 했다.

추경은 세수가 ‘남는 만큼’ 편성하는 게 아니라 ‘꼭 필요한 만큼’ 알뜰하게 편성하고 재정 여력은 아껴두는 게 책임 있는 정부의 자세다. 2009년 수퍼 추경처럼 재정이 힘을 써야 할 곳은 앞으로도 수두룩할 테니까.





서경호([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