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사회적 위신이 가장 높은 직업이 판검사다. 현대판 과거시험 등극자로 치부되는 이 직종의 위세는 하늘을 찌르는 한편, 사회적 미움도 동시에 받는다. 검찰과 법정에서 한번 당해본 사람들은 치를 떤다. 증오를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한다.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유아독존 집단에 유혹의 손짓을 보내는 건 정치권이 유일하다. 정권과 검찰의 은밀한 합작, 이른바 ‘정검(政檢) 야합’은 민주화 39년간 한국 정치를 수렁에 빠뜨렸던 최악의 오염원이었다.
‘정검 야합’ 제거는 환영할 개혁
소송 대란은 국민에게 부과된 짐
사법견제 없는 절대권력의 탄생
초법 위헌 행위는 누가 고소할까
MB정권의 일등 공신이었던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후진술』이란 제목의 체험 소설을 썼다. 정권이 바뀌자 표적 수사 대상이 된 강 장관은 곧 별건 수사 늪으로 빠져들었다. 일거수일투족이 털렸다. 그는 CCTV가 작동하고 24시간 불 켜진 한 평 반짜리 독방에 6개월간 갇혔다. 인권은 대학에서나 하는 얘기였다. ‘검찰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드는 조물주, 헌법은 그들의 발밑에 깔려 있었다.’ 4년 8개월 형기를 채우고 나온 강 장관의 피맺힌 토로다.
별건 수사와 증거 조작의 달인들, 정검 야합을 묵인한 판사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탈 없이 잘 살았다. 그런데 이제 옛말이 됐다. 무적의 검투사 정청래 여당 대표가 듣도 보도 못한 무서운 말을 내뱉었다. ‘증거 조작을 행한 검사들을 모조리 감옥에 보낼 것이다.’ 판검사에게 호되게 당한 사람들의 체증이 쑥 내려가겠다. 수사 지옥에서 기사회생한 이재명 대통령도 ‘사법 3법’을 의결하면서 쌍방울 회장의 대북 송금 사건 조작을 언급했다. 무소불위의 판검사들이 감옥 가는 세상을 다 보게 생겼다.
속 시원한 것은 딱 여기까지다. 사법 3법이 몰고 올 엄청난 부작용은 오롯이 국민이 감당할 몫이다. 지난 12일 0시를 기해 발효된 ‘법왜곡죄’와 ‘재판소원법’은 판검사는 물론 법적 다툼 당사자들에게 지긋지긋한 소송 지옥의 문을 열었다. 소송 대란 역효과는 국민의 법적 권리를 보호한다는 애초의 명분을 덮고도 남는다. 게다가 정치권에 대한 사법부의 견제 장치는 말끔히 제거되었다. 윤석열의 정검(政檢) 공세에 혼쭐이 난 현 정권은 국민을 소송 대란에 밀어넣고 사법의 칼춤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 정권엔 신명나는 개혁, 국민에겐 괴로운 ‘개악’이 그로써 완료됐다.
양심 수사와 소신 판결을 행하는 판검사들마저 고소·고발의 위험지대로 강제 이주시킨 것이 법왜곡죄다. 한국의 민형사 소송 건수는 OECD 국가 중 최상위권. 2025년 통계에 의하면 한국은 691만 건, 일본은 350만 건, 프랑스는 단 90만 건 정도였다. 인구 대비로 보면 한국이 4~8배 높은 끓는 냄비다. 막후 타협은 없고 법정 다툼으로 끝장을 보는 한국인의 습성은 대상이 판검사라고 달라지지 않는다. 12일 0시를 기해 판검사는 마침내 3D 직종으로 전락했다. 이익 다툼, 범죄, 사기, 협박 등 너저분한 사건을 다루고(Dirty), 해석 재량권을 발휘하지 못하고(Difficult), 고소·고발 위험에 항시 직면한다(Dangerous). 차라리 법조문에 찰싹 달라붙는 AI에게 판결을 맡기면 어떨까. 그러면 AI도 감옥 갈지 모른다.
4심제를 허용한 ‘재판소원법’ 도입으로 인해 최종 심급으로서 대법원의 권위가 한없이 추락했다. 대법원 판결 불복 조항의 위헌 여부는 법조계가 해결할 절박한 숙제이겠지만, 헌재(憲裁)까지도 소송 대란에 휘말린다면 국가와 사회의 기본 질서를 다룰 중대한 기능을 말소하는 것과 같다. 법조계는 대법원과 헌재에 일 년 1만~1만5000건 업무량 폭증이 일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유능한 집단이니 잘 적응하겠지만, 반드시 짚어야 할 국가적 사안이 남았다. ‘사법 3법’의 이익은 오로지 정치권이 독식했다는 사실이다. 애초 사법 개혁의 설계가 그렇게 돼 있었다. 검찰을 두 조각 내 ‘검찰개혁’의 목적을 이미 달성한 현 정권이 대법원 장악에 들어간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자진 사퇴와 탄핵 협박을 견디고 있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결국 법왜곡죄 피고발인 1호가 됐다. 법왜곡죄의 정치적 효용이 시행 첫날 백일하에 드러났다. 사법 3법은 ‘정권의 사법 장악’과 ‘법적 견제에서 해방된 절대권력’으로 가는 신작로다. 몇 겹의 두터운 울타리가 쳐졌다.
우선 중수청과 공소청, 두 조각으로 쪼개진 검찰은 이제 종이호랑이 신세다. 중수청은 공직자 범죄와 선거 범죄에 손도 못 댄다. 조항이 삭제됐다. 보완수사권이 없는 공소청은 경찰수사를 답습할 뿐이고, 정당이 법왜곡죄를 악용해 경찰과 공소청을 동시에 고발하면 정치적 사건은 소실되고야 만다. 사법경찰 절반이 전문교육이 필요하다는 통계도 있다. 증원될 대법관 26명은 정권의 법적 경호원이다. 정권에 대한 사법의 견제는 그렇게 사라졌다. 삼권분립의 균형을 깬 독점 권력이 탄생할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사법을 노새처럼 부리는 초법행위, 사법 견제에 빗장을 채운 위헌행위를 ‘정치 왜곡죄’라고 한다면, 누가 고소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