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부터 시행된 법왜곡죄 때문에 “우리만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졌다”는 목소리가 경찰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법관 또는 검사의 법리 판단을 범죄로 입증해야 해 수사 자체의 난도가 높을 뿐 아니라, 수사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찰이 고소·고발 대상이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당초에는 법왜곡죄가 도입되면 경찰의 권한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법왜곡죄가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이른바 ‘사법 3법’(법왜곡죄·재판소원제·대법관 증원) 중 하나이고, 검찰개혁안(공소청법·중수청법)과 함께 추진됐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검찰 수사권 조정과 법왜곡죄가 결합되면, 경찰이 법률 해석·적용의 위법 여부를 수사하면서 대법원의 상위에 위치한 새로운 법 해석 기관이 될 수도 있다”(곽상언 의원)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중앙일보가 15~16일 만난 경찰관들은 대체로 법왜곡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서울의 한 일선 경찰서장은 “수사·재판 결과에 불만을 가진 민원인들의 화살이 종국엔 경찰로 다 몰리게 될 것”이라며 “경찰 내부에서도 달가워하지 않는 기류이고, 수사 분야를 기피하는 현상도 더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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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되는 판·검사 수사
경찰이 공식 배당한 법왜곡죄 대표적 사건은 조희대 대법원장 관련 건이다. 조 대법원장이 지난해 5월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파기환송 결정을 내린 것이 형사소송법상 ‘서면주의 원칙’을 어겼다는 의혹이다. 사건은 서울청 광역수사단으로 이송될 예정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16일 “사건에 참고할 만한 자료를 확인하고 있고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며 “이외에도 추가로 접수된 법왜곡죄 관련 사건이 있는지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일선서에선 걱정이 가득하다. 서울 일선서의 한 형사과장은 “판·검사를 수사해달라는 고소·고발장이 물밀 듯이 들어올 것 같은데, 법관의 판단을 우리가 어떤 자료로 입증할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신설된 조문이라 판례도 없을 뿐 아니라, 재판부의 주관적 고의를 규명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다른 일선서 수사관도 “판사의 마음을 읽는 ‘관심법’을 써야 할 판”이라고 언급했다.
혐의가 짙다고 해도 강제 수사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재판부 내부 검토자료 등 물증 확보가 필수인데, 영장 발부를 결정하는 곳도 법원이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경찰 관계자는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조직 대 조직의 싸움으로 비화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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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로 향하게 될 화살
법왜곡죄 수사를 하던 경찰관이 외려 법왜곡죄 피의자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민원인이 본인의 사건 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찰까지 고소·고발할 수 있는 구조”(검사 출신 변호사)이기 때문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 교수는 “이렇게 되면 결국 경찰을 다른 동료 경찰이 다시 또 수사해야 하는 ‘무한의 소송 루프’가 반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민원인과 직접 소통하는 일선 수사관들이다. 수도권 지역의 한 수사관은 “앞으론 수사를 열심히 해서 송치를 해도 걱정이고, 증거가 불명확해 불송치 결정을 해도 걱정”이라며 “변호사 선임비용이 수백만원에 달하는데, 일단 소송을 당하게 되면 내 월급으로는 감당이 불가능할 것 같다”고 밝혔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의 경찰청 게시판에도 “다들 수사받을 각오하라”거나 “우리 모두 피의자가 될 텐데 얼른 탈출하라”는 등의 자조 섞인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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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적체될 민생 사건
결국 법왜곡죄의 폐해가 일반 국민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경찰청에서 근무하는 한 간부는 “범죄가 국제화·첨단화되면서 수사에 소요되는 시간은 길어지는 동시에, 처리해야 할 사건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법왜곡죄 사건까지 추가된다면 수사 적체가 심화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고 설명했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연도별·유형별 미제사건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관리미제사건 수는 22만525건에 달했다. 10년 전(2016년·15만7150건)과 비교해 약 40% 증가한 수치다.
경찰청은 조만간 전국 시·도경찰청과 논의해 ‘법왜곡죄 적용기준 및 접수 시 처리방안’ 지침을 마련할 방침이다. 관련 사건을 일선 경찰서가 아니 시·도 경찰청이 직접 수사하고, 경찰이 법왜곡죄 고소·고발 대상이 될 상황에 대비해 수사 기록을 꼼꼼히 남기라는 내용이 담길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