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최고지도자 승계를 둘러싸고 군부 강경파와 온건 진영이 일주일간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인 끝에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새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최종 승자는 군부였지만, 온건 세력의 거센 저항 속에 가까스로 주도권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NYT)는 16일(현지시간) 복수의 이란 고위 당국자와 성직자, 혁명수비대(IRGC) 관계자 등을 인용해 모즈타바의 등극 과정을 “이란판 ‘왕좌의 게임’”이라고 보도했다.
모즈타바의 최고지도자 등극은 겉으로는 예정된 승계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권력 핵심부의 이해관계가 충돌한 결과였다. 최고 권좌가 공석이 되자 헌법상 후계자를 선출할 권한을 가진 전문가회의가 가동됐고, 권력 중심축인 군부와 정치권, 종교계 파벌이 복잡하게 얽혔다.
NYT에 따르면 부친인 알리 하메네이가 전쟁이 아닌 자연사로 사망했다면 모즈타바의 승계 가능성은 크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메네이는 생전 측근들에게 잠재적 후계자 3명을 제시했지만 아들은 명단에 포함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하메네이가 사망하면서 권력 공백이 발생했고, 이는 곧 권력투쟁으로 이어졌다.
권력 투쟁은 혁명수비대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와 정치권 온건 세력의 대결 구도로 전개됐다. 강경파는 대외 강경노선 유지와 체제 결속을 주장하며 모즈타바를 지지했다. 여기에는 혁명수비대 총사령관 아흐마드 바히디, 군 전략가 모하마드 알리 아지즈자파리, 국회의장이자 전 수비대 사령관 출신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등이 가세했다. 수비대 정보조직 수장을 지낸 호세인 타에브도 핵심 지원 세력으로 분류된다.
반면 온건 진영은 사회 통합과 대외 긴장 완화를 이유로 모즈타바 선출에 반대했다. 알리 라리자니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은 “분열적 지도자가 될 수 있다”며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했다. 온건 성향의 마수드페제시키안 대통령과 일부 고위 성직자들도 반대 대열에 합류했다.
온건파는 대안 후보로 하산 로하니 전 대통령과 이슬람공화국 창시자 루홀라 호메이니의 손자인 하산 호메이니를 내세웠다. 절충안으로 종교학자 알리레자아라피도 거론됐다.
최고지도자 선출 권한을 가진 전문가회의는 지난 3일 보안 문제로 비공개 화상회의를 열었다. 선출 정족수는 재적 3분의 2 이상 찬성이다.
1차 투표에서 모즈타바가 기준을 넘긴 것으로 전해지면서 국영매체는 발표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라리자니 측이 제동을 걸었다. 그는 후계 발표가 모즈타바를 미국과 이스라엘의 표적으로 만들 수 있다며 연기를 요구했다. 동시에 헌법상 대면 투표 원칙을 들어 화상 투표의 절차적 하자를 제기했다.
온건파는 모즈타바가 최고지도자직을 원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함께, 하메네이가 생전 “세습 승계는 1979년 이슬람혁명 정신에 어긋난다”는 뜻을 밝혔다는 유언도 제시하며 재논의를 요구했다.
권력 구도가 흔들리자 군부가 직접 개입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주변 아랍국가들에 군사행동 중단 의사를 밝히자 혁명수비대 수뇌부는 강하게 반발했고, 즉각 최종 표결을 하라고전문가회의를 압박했다.
타에브 전 정보수장은 성직자 88명 전원에게 직접 연락해 모즈타바 지지를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최고지도자 가문을 지지하는 것은 종교적·도덕적 의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결국 8일 다시 열린 회의에서 재투표가 실시됐다. 전시 상황에서의 화상 투표는 유효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고, 표결이 강행됐다. 그 결과 모즈타바는 전체 88표 중 59표를 얻어 선출 요건인 3분의 2 이상 찬성을 확보했다. 만장일치는 아니었지만 선출 정당성은 충족했다.
자정 무렵 국영매체가 새 최고지도자 선출을 공식 발표했고, 반대 진영 인사들까지 잇따라 충성 성명을 냈다고 NYT는 전했다. 다만 모즈타바는 이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모즈타바가 중상을 입고 러시아로 극비리에 이송돼 수술을 받았다는 보도도 나왔다. 알자라이다는 15일 이란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모즈타바가 건강과 신변 안전 문제로 모스크바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으며, 현재 대통령 관저 내 병원에서 회복 중이라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 12일 페제시키안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직접 치료 지원을 제안했고, 당일 저녁 모즈타바는 의료진과 함께 러시아 군용기를 이용해 이송됐다.
이란 정보당국은 이스라엘이 최고지도자를 겨냥한 공습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자국 의료시설이 표적이 될 가능성을 우려해 해외 이송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모즈타바는 국영TV를 통해 항전 의지를 담은 첫 성명을 발표했지만, 앵커가 이를 대독하는 방식이었다. 이 때문에 그의 건강 이상설이 확산됐다. 가디언은 모즈타바가 혼수상태에 빠져 극비 치료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고, 이스라엘군은 개전 초 다리 부상을 입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란 당국은 모즈타바의 신변 이상설을 공식 부인하고 있다. 미 시사잡지 뉴요커는 “모즈타바는 오랜 기간 혁명수비대 내부에서 지지 기반을 구축해왔다”며 “성직자 복장을 한 ‘가벼운 버전의 푸틴’에 가깝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