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방국에 호르무즈 해협 안전 확보를 위한 군사작전 참여를 요구한 가운데 유럽 국가들은 일제히 난색을 보였다. ‘우리 전쟁이 아니다’며 선을 긋거나 확답을 미루는 등 부정적 반응을 내놓고 있다.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16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외무장관 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누구도 이 전쟁(이란 전쟁)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원치 않는다”며 “현재로서는 아스피데스(Aspides·방패) 작전 권한을 변경하려는 의지는 없다”고 말했다. EU 회원국들은 2024년 2월부터 홍해에 해군을 보내 친이란 예멘 반군 후티의 공격으로부터 상선을 보호하는 아스피데스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칼라스 대표는 회의에 앞서 “아스피데스 작전 지역을 홍해에서 호르무즈 해협까지 확대할 수 있는지 논의하겠다”고 말했지만 회원국 총의는 거부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풀이된다. 로이터통신은 칼라스 대표가 이날 회견에서 “이것은 유럽의 전쟁이 아니다”라고도 말했다고 전했다.
개별 국가 차원에서도 부정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이날 “전쟁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군사적 수단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하는 데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전쟁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다”며 “미국·이스라엘이 이란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하기 전 다른 나라들과 협의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전날 요한 바데풀 독일 외무장관도 호르무즈 군사작전과 관련해 “즉각적인 필요성이 없다. 무엇보다 독일이 참여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고 말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이날까지 호르무즈 군사작전 요청에 확답을 피하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주요 외신은 이를 사실상 거부로 해석하고 있다. 스타머 총리는 이날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위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 모든 동맹국과 협력하고 있다”라면서도 “이는 나토 임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 파견을 요구하며 “응답이 없거나 부정적 반응을 보이면 나토 미래에 매우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으나 선을 그은 것이다. 스타머 총리는 “영국은 더 확대된 전쟁으로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전쟁 이후 중동에 항공모함을 보낸 프랑스도 유보적 입장을 내놨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호위 임무는 분쟁의 가장 뜨거운 단계가 종료된 이후”라고 못 박았다. 카트린 보트랭 프랑스 국방장관도 “호르무즈 해협으로 함선을 보낼 즉각적인 계획은 없다”고 했다.
AFP 통신에 따르면 폴란드·스페인·그리스·스웨덴 등 유럽 내 다른 국가들도 호르무즈 해협 군사작전과 거리를 두고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대한 답을 언제까지 미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영국 BBC는 “현재 미국의 동맹국들은 ‘이란 개입’이라고 적힌 문 앞에서 서성이며 서로를 불안하게 바라보고만 있지만 무대응은 진짜 옵션이 아님을 알고 있다”며 “선택의 순간은 이미 닥쳤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