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거리 예술가’ 뱅크시의 정체가 영국 출신 그라피티 작가 로빈 거닝엄일 가능성이 크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로이터 통신은 1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현지 활동과 출입국 기록, 법원 자료 등을 종합 분석한 결과 이같이 판단했다고 밝혔다.
보도의 핵심 단서는 2022년 러시아 침공 이후 키이우 인근 호렌카 마을에서 발견된 벽화다. 당시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 사이에 그려진 작품을 두고, 목격자들은 마스크를 쓴 남성 2명이 스텐실 기법으로 짧은 시간에 작업했으며, 한쪽 팔이 없고 의족을 착용한 남성이 함께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 인물은 201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사고로 팔다리를 잃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자일스 둘리로 지목됐다.
로이터는 둘리의 이동 경로를 추적해 그가 영국 밴드 ‘매시브 어택’의 멤버 로버트 델 나자, 그리고 ‘데이비드 존스’라는 인물과 함께 우크라이나에 입국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이 ‘데이비드 존스’의 여권상 생년월일이 거닝엄과 일치했다는 점이 결정적 근거로 제시됐다. 아울러 2000년 미국 뉴욕에서 광고판 훼손 혐의로 체포됐을 당시 거닝엄이 자백했다는 기록도 확보했다고 덧붙였다. 그간 뱅크시의 정체를 둘러싸고 델 나자 등 여러 인물이 거론돼 왔지만, 로이터는 다양한 법적·이동 기록을 교차 분석한 결과 거닝엄이 가장 유력하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뱅크시 측과 작품 인증 기관인 ‘페스트 컨트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며 공식 확인을 피했다. 변호인 마크 스티븐스는 익명 활동이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뱅크시는 1990년대 영국 브리스틀을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해 전쟁·난민·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작품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2018년 경매에서 작품이 낙찰 직후 자동 파쇄되는 퍼포먼스로 화제를 모으는 등 신비주의적 행보를 이어왔다. 이번 보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체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며, 익명성 유지 여부를 둘러싼 논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