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사태 장기화로 동아시아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운 가운데 중국만 상대적으로 충격을 비껴가는 모습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로 국제유가가 치솟지만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의 환율과 주식시장은 비교적 평온하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이달 들어 17일까지 중국 역내(CNY)와 홍콩 역외 시장(CNH)에서 위안화는 모두 달러당 6.85~6.9위안대에서 움직였다. 이 기간 중국 위안화 가치는 0.45% 하락하는 데 그쳤다. 미국과 이란 간 갈등이 격화한 이후에도 움직임이 크지 않다. 반면 같은 기간 한국 원화와 일본 엔화 가치는 각각 3.74%, 2.22% 내렸다(환율은 상승).
1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오후 3시30분(주간 거래) 여전히 1490원대를 웃도는 1493.6원에 마감했다. 전날에는 2009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주간 거래에서 1500원 선을 넘기도 했다. 중동 충돌 직전 155엔대에서 움직이던 엔-달러 환율도 단숨에 160엔에 근접하며 ‘슈퍼 엔저(엔화값 급락)’ 우려를 키우고 있다.
한·중·일 증시 흐름도 비슷하다. 이달 17일 한국 코스피는 지난달 말 대비 9.7% 급락했다. 같은 기간 일본 닛케이지수도 8.8% 추락했지만,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2.7% 내렸을 뿐이다.
유가 급등에도 중국 경제의 맷집이 상대적으로 강한 것은 원유 수입선을 분산해 온 영향이 크다. 일본은 원유 수입량의 90% 이상을, 한국도 70%가량을 중동에서 들여온다. 상당량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어오는 만큼, 바닷길이 봉쇄되면 에너지 공급에 직격탄을 맞는다. 반면 중국의 중동 의존도는 절반 정도다. 중국은 그동안 러시아와 브라질, 앙골라 등지로 공급선을 넓혀 원유 수입처를 다변화했다. 그뿐이 아니다. 해상 수송에 차질이 생기면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미얀마를 잇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육상으로도 원유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 제재를 받는 러시아 원유를 할인된 가격에 더 많이 수입할 수 있었다.
쟁여둔 원유도 적지 않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에너지 분석기업 케이로스는 “중국의 전략적 비축량은 4억1300만 배럴로 추산되지만, 지하 동굴 저장고까지 고려하면 최대 14억 배럴에 이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전략비축유(약 4억1500만 배럴)와 비교하면 최대 3배 이상이다.
경제를 움직이는 에너지원도 다르다. 한국과 일본 산업(공장)이 수입 원유와 천연가스(LNG)에 의존하는 반면 중국의 핵심 연료는 석탄이다. 신한은행에 따르면 중국은 전체 에너지의 약 60%를 자국에서 캐내는 석탄으로 충당한다. 국제유가 급등이 산업 비용으로 전이되는 충격이 한국과 일본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중동사태에도 중국 외환시장의 변동 폭이 크지 않은 데는 정부의 환율 관리도 영향을 미친다. 중국은 중앙은행이 매일 위안화 기준환율을 고시하는 관리변동환율제다. 중국 외환시장에선 기준환율을 중심으로 플러스, 마이너스 2% 내에서만 거래할 수 있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에너지 공급망을 다변화한 중국은 중동 사태가 장기화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충격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중동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다 보니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경제에 타격이 크다”며 “지금이라도 원유 공급선을 미국 등지로 다양화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