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오일 쇼크는 세계 성장률을 끌어내렸다. 미국처럼 소비 성향이 강한 나라에서 소비자들이 석유에 더 많은 돈을 쓰자, 그 돈이 산유국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산유국들은 수입을 곧바로 소비하지 않고 쌓아두었고, 세계 경제는 소비가 줄고 저축이 늘면서 성장 속도가 둔화했다.
급격한 가격 변화를 이해하려면 “돈의 흐름을 따라가라”는 원칙이 유용하다. 누가 더 많이 내고, 누가 더 많이 받으며, 그 돈이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를 보면 된다.
한국처럼 정부가 세금 조정이나 공기업 요금 정책으로 에너지 가격 상승을 완충하는 나라에서는 소비자가 유가 상승을 곧바로 체감하지 않는다. 국가 재정이나 공기업이 비용의 일부를 떠안기 때문에 유가 상승이 물가와 성장에 미치는 단기 충격이 제한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재정 부담이나 공기업 부채가 늘어나는 문제가 뒤따른다. 또 소비자가 가격 신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면 에너지 절약이나 효율 개선의 유인도 약해질 수 있다.
재정이 이런 충격을 흡수하지 않는다면 소비자가 직접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소비자는 생활 수준을 쉽게 낮추지 않는다. 단기적으로는 저축을 줄이거나 빚을 내 버틴다. 그러나 유가가 오래 높게 유지되면 결국 석유 소비나 다른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
오늘날 산유국들은 1973년과 달리 석유 수익을 더 적극적으로 지출할 가능성이 크다. 인구 증가와 국방비 확대 등으로 재정 지출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번 유가 상승이 과거 오일 쇼크 때처럼 세계 경제 성장률을 크게 끌어내리지는 않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세계 경제의 소비 흐름은 달라질 수 있다. 유가가 오르면 글로벌 소비의 중심도 이동한다. 미국 소비자의 소매 지출 비중은 줄어들고, 대신 걸프 국가들의 국방·인프라 지출이 늘어날 수 있다.
석유 기업들도 일부 수익을 가져간다. 이 수익은 배당으로 주주에게 돌아간다. 관건은 누가 그 주식을 가지고 있느냐다. 소비 성향이 높은 저소득 가계가 주유소에서 지불한 돈이 결국 소비 성향이 낮은 고소득 가계의 배당 소득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유가 상승은 세계 경제의 흐름을 바꾸고 경제 주체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그러나 돈의 흐름을 살펴보면 한 가지 사실이 드러난다. 소비 구조가 변하면서 일부 산업과 경제 주체는 오히려 이익을 얻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유가 충격을 단순한 경기 둔화의 신호로만 볼 것이 아니라, 소비와 지출의 방향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유가 그 자체보다 그 변화가 세계 경제의 돈의 흐름을 어떻게 재편하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