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소싯적 사회인 야구를 했을 때의 점수까지 떠올랐다. 엘리트 출신 야구팀을, 우리 같은 아마추어들이 당해낼 수 없었다. 콜드게임으로 마지막 이닝이 된 5회에는 상대 투수가 아리랑 볼을 연속으로 던지기까지 했다. 그런 수모가 없었다.
지난 주말 한국 국가대표 야구팀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전에서 도미니카공화국에 당한 콜드게임이 기자의 20여 년 전 굴욕을 끄집어냈다. 한국 언론은 국내에 ‘콜드게임’이란 표현을, 온라인 영문판에는 ‘머시 룰(Mercy rule)’로 썼다. 풀어쓰자면 ‘자비의 규칙’이다. 점수 차가 정해진 한도 이상 벌어지면 경기를 중단시키는 제도다. 지고 있는 팀에게 ‘수고했어, 그만해도 돼’라는 배려이고, 이기고 있는 팀에게는 ‘할 만큼 했네, 그만 쉬자’는 격려다. 미국에서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야구에 적용되지만, 미식축구와 아이스하키에도 있다. 제도는 아니더라도 배려 불문율도 있다. 탁구에서는 10-0이면 상대방에게 영패를 모면하게 해주려고 일부러 미스 서브를 한다. 큰 점수로 이기고 있으면, 야구에서는 도루하지 않고 농구에서는 올코트 프레스를 하지 않는다.
스포츠를 벗어나면 상대 배려 의미와 말도 비슷한 ‘자비의 원칙(Principle of charity)’이 있다. 타인의 발언이 항상 일관성 있고 합리적이라는 가정하에 그 발언을 해석해야 한다는 철학·논리학적 접근이다.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해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 오류로 규정할 때 자비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 현재 정치권을 뒤덮고 있는 ‘카더라’식 주장이 그중 하나다. 이 자비의 원칙도 결국엔 비판을 위한 심사숙고임을 고려하면, 100% 배려는 아닌 것 같다.
‘자비의 규칙’도 마찬가지다. 콜드게임 자체가 굴욕이 됐다. 탁구공을 일부러 엉뚱한 곳으로 보내면 영패 앞의 상대가 발끈하기도 한다. 농구에서 크게 이기고 있어 ‘가비지 타임(Garbage time·후보를 대거 기용하는 여유 있는 팀 운영)’이라며 설렁설렁하다간 상대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다. 배려와 무시는 한 끗 차이다. 20여 년 전 야구 경기에서 상대는 하면 안 될 말을 했다. “재미있는데, 더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