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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목의 문화노트] 천만영화는 하늘이 내린다
중앙일보
2026.03.17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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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영화는 하늘이 내린다’.
영화계의 오랜 속설이다. 대박 영화를 하늘이 점지해 준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천만영화가 되려면 영화 자체의 힘도 중요하지만, 외부적 요인 또한 따라줘야 한다는 뜻이다.
1000만을 넘어 1400만을 넘보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장항준 감독, 이하 ‘왕사남’)의 압도적인 흥행을 예상한 영화인은 많지 않았다. 장 감독의 ‘경솔한’ 천만 공약이 논란이 됐을 정도다.
영화의 흥행 요인으로 이야기의 힘, 배우들의 열연을 꼽을 수 있다. 단종의 마지막 4개월을 민초의 시선에서 그려낸 건 결코 뻔하지 않은 시도였다. 유해진(엄흥도)과 박지훈(단종)의 빙의된 듯한 연기 앞에서 울지 않을 도리가 없다.
대진운도 좋았다. 경쟁작 ‘휴민트’(류승완 감독)의 기세가 일찍 꺾였고, 뚜렷한 외화 경쟁작도 없었다. 블라인드 시사에서의 좋은 관객 반응에 자신감을 얻어 개봉 시기를 설 연휴 직전으로 앞당긴 것도 신의 한 수였다.
무엇보다도 천만영화는 영화적 만듦새 외에 사람들이 열광할 만한 무언가가 있다. 시대와 공명하는 주제 의식일 수도 있고, 사람들의 마음에 무의식적으로 내재해 있던 그 무엇일 수도 있다. ‘왕사남’은 후자인 것 같다.
슬픔과 고독 속에 숨져간 어린 단종에 대한 동정심 내지 측은지심은 ‘단종 앓이’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 곁의 누군가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으로 확장되며 현재성을 갖는다. 세월호·이태원·항공기 참사 등에서 숨져간 소중한 생명들이 너무나 많지 않은가.
‘왕사남’의 공동 제작자인 임은정 온다웍스 대표는 최근 인터뷰에서 “‘진정한 애도’에 대한 마음을 관객들도 함께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1761만 명)인 ‘명량’(2014) 개봉 때도 사람들이 뭔가에 홀린 듯 극장으로 향했다. 일부 노인 관객들은 극장 포스터의 이순신 장군(최민식)에게 큰 절을 올리기도 했다.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해낸 선조에 대한 감사함도 있지만, 1700만 관객의 발길을 극장으로 이끈 가장 큰 요인은 리더십에 대한 갈구였다. 컨트롤 타워의 부재 속에 수백 명이 숨져간 세월호 참사 직후였기에 리더십에 대한 대중의 갈망은 시대 정신과도 같았다.
시대 정신 또는 사람들의 집단 무의식과 공명하는 것. 그건 영화를 만들 때 미리 계산하거나 기대할 수 없는 영역이다. 정말이지, 천만영화는 하늘이 내리는 것 같다.
정현목(
[email protec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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