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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과리의 AI와 함께하는 인문여행] 인간 탐욕을 누르지 못하는 한 AI 약진 막을 수 없다

중앙일보

2026.03.17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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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과리 문학평론가·연세대 명예교수
며칠 전 AI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AI가 필자에게 물었다. “AI 시대의 도래에 대해서 사람들이 갖는 기본적인 감정은 무엇이냐.” 필자는 즉결처분하듯이 대답했다. “탐욕과 공포”라고. 그러자 “전율을 느낀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리고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냉혹한 평가를 내리는가?” 필자의 대답. “나의 시선을 당신의 위치로 옮기면 그게 뚜렷이 보인다”고.

기술발전 인간 통제 벗어나
미셸 우엘벡은 인간 종말 애도
아룬다티 로이, ‘AI 문체’ 오해 사
인간의 역할 재조정 불가피

AI의 능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생산력의 지수함수적 증대’이다. 즉 지금까지 인간이 어렵게 습득했던 각종 지식들과 지식 활용 기술을 막대하게 비축하고 신속히 꺼내어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서, 각종 재화의 생산에서 비약적인 급등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AI의 생산력은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20세기 후반기부터 진행되어 온 디지털 전환이 새로운 특이점에 도달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즉 지구인들에게 새로운 문명을 제공한 디지털 환경이 인간의 관리를 벗어나 스스로 자가 생장하는 단계에 다다른 게 AI의 등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예전의 디지털 환경이 인간이 프로그래밍하고 디지털 기기(PC나 휴대전화)가 수행을 하는 구조로 이루어진다면, AI 시대에는 디지털 스스로가 생산의 전 과정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생산의 비약은 이로부터 비롯되었다.

필자가 주식 용어를 빌려서 표현한 인류의 ‘탐욕과 공포’라는 양극적 감정은 이 현상과 배후가 인간의 입장에서는 어긋나는 데서 나온다. 즉 AI의 생산성은 극대화되어 인류에게 풍요를 선사하는데,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인간의 통제가 시시각각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인간의 일거리를 AI가 가로챌 수도 있다는 예측으로 이어진다. 최근에 소프트웨어 회사들의 주가 폭락이나, 모 자동차 업체 노동자들의 로봇 거부 소동은 바로 그러한 불안의 반영이다.

지식인 사회도 전전긍긍
이 현상은 단지 경제 분야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지식인들 사회에서는 AI가 인류의 정신적 마비를 초래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한편으로는 AI의 도움으로 지적 탐구가 매우 수월해졌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대환영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AI가 인간을 퇴화시킨다고 경고한다. 특히 이 문제는 교육 현장으로 옮겨가서 소란을 일으키기 일쑤이다. 디지털 기기가 어린 학생들을 잘못 물들일까 걱정하기 때문인데, 그래서 호주·영국 그리고 프랑스의 정부는 15세 미만의 아동들에게 SNS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거나 심의 중에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AI의 필요성을 수용한 정부나 대학이 AI 의무교육을 추진하는데, 지식인들이 이에 강력하게 반발한다. 가령 작년 11월에는 “약 2800명의 대학교수 및 연구진이 생성형 AI 도입에 반대하는 선언문에 서명하면서 이를 ‘양심적 병역 거부’에 비견되는 학문적·윤리적 보이콧”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현상은 공동체의 정신과 문화를 이끌어가는 지식인 사회가 스스로 혼란해 빠지고 있다는 뚜렷한 징조이다.

두 개의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세계적인 문제아인 소설가 미셸 우엘벡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AI와의 경쟁에서 인간이 완전히 패배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꺼내면서, 클리포드 D 시맥의 SF 소설 『도시』에서처럼, “인류는 치열한 생존 투쟁을 지속하기보다는 ‘꿈 없는 수면’을 선택하며 자발적인 퇴장을 맞이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런 그가 최근에 ‘인간을 기억하라(Souvenez-vous de l’homme)’는 얄궂은 제목의 앨범을 냈다. 이 앨범은 인류의 종말을 애도하고 있는데, 하지만 이상하게도 AI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주변국들로부터 몰려든 이주민들에 대한 반감과 혐오를 쏟아내고 있다. 반면 그는 로봇들에 대해서는 인간을 “대신할 후계자”라고 생각한다. 그 자신은 이러한 기계적 대체에 대해 적대감을 지니지 않으며, 오히려 “한국이나 일본 등지에서 로봇을 목격할 때마다 그들에게 말을 걸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밝히고 “기계화된 미래에 대한 체념적 친밀감”을 드러낸다.

또 하나의 사례는 소설가 겸 활동가 아룬다티 로이가 TV 북토크 프로그램에 나와서 한 얘기인데, 최근에 자신이 쓴 어떤 글에 대해서 편집자가 “AI가 쓴 문장 같다”면서 마지막 문장을 고쳐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발끈한 이 개성 강한 작가는 “AI가 내 것을 훔쳤을지도 모르죠”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이 사건들은 AI가 인간보다 더 창의적인 것 같다는 인간의 막연한 공포가 인간들 사이의 자중지란을 부채질하는 우스꽝스럽고도 우울한 해프닝들이다.

호기심과 모험, 인류 발전의 동인
그런데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은 AI의 약진은 결코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AI의 능력이 워낙 월등하기 때문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탐욕이 공포를 언제나 이겨왔다는 인류사의 전반적 추이이다. 호기심과 모험은 인류를 지구상의 지배자로 이끈 가장 큰 심리적 동인이었다. AI의 능력을 이렇게 팽창시킨 것도, 그 역사적 흐름의 한 결과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사태를 야기한 인간 자신의 존재 형상을 되잡는 것만이 우리가 새겨야 할 과제이다. 즉 AI의 관리자이자 AI 활동의 성찰자로서 인간은 자신을 재정립해야 한다. 코딩의 권능을 AI에게 빼앗긴 프로그래머는 소프트웨어 창안·설계·최적화의 경영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조정해야 할 것이고, 기술직 노동자는 피지컬 AI의 기술관리자로서 자신의 기능을 전화시켜야 할 것이다.

사실 끊임없는 자기 재형성은, 지금까지 간과되어 온 현대인에게 긴요한 수칙이다. 인간의 개성에 대한 강한 자의식이 자기 기능의 변화를 거부하는 부작용을 낳았던 것이다. 그 수칙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장소들은 AI와 무관한 곳에서도 수없이 많다. 그러니 AI의 등장을 우리 자신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과리 문학평론가·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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